할리우드보다 먼저, 포트리가 미국 영화의 고향이었다 - Fort Lee - 1

월요일 아침, 조지워싱턴 브리지 진입로에서 차가 또 꼼짝을 안 했어요. 앞차 브레이크등만 멍하니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동네가 원래 미국 영화의 수도였다는 거, 출근하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알까.

저도 사실 얼마 전까지 몰랐어요. 포트리 하면 한인 마트, 순두부집, 다리 건너 맨해튼 출근길 정도만 떠올렸거든요.

그런데 찾아보니 할리우드보다 포트리가 먼저였습니다. 그것도 꽤 확실한 기록으로요.

시작은 1907년입니다. 토머스 에디슨 회사가 팰리세이즈 절벽에서 영화 한 편을 찍었는데, 제목이 "Rescued from an Eagle's Nest"였어요.

독수리가 아기를 채가고 아버지가 구해내는 내용인데요. 여기서 배우로 주연을 맡은 사람이 나중에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D.W. 그리피스였습니다.

같은 해 칼렘 컴퍼니도 포트리를 촬영지로 쓰기 시작했고, 다른 제작사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어요.

맨해튼에서 페리 타면 바로 닿는데 땅값은 뉴욕보다 훨씬 쌌거든요. 절벽, 숲, 강, 시골길까지 다 있으니 서부극 배경으로도 그럴듯했고요.

첫 번째 상설 스튜디오는 챔피언 필름 컴퍼니가 포트리 북쪽 코이츠빌에 지었습니다. 일부러 외진 곳을 골랐다는 얘기가 재밌어요.

당시 에디슨이 주도한 특허 연합이 영화 장비 특허로 독립 제작사들을 압박하고 있었거든요. 그쪽 탐정들을 피하려고 숨어서 찍었다는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본사 감사팀 피해서 외근 나간 느낌이랄까요. 회사원 입장에서 묘하게 공감이 가더라고요.

이 챔피언 스튜디오를 사들인 사람이 칼 레믈이었습니다. 1909년에 포트리에서 "Hiawatha"를 찍었고, 1912년에 다시 와서 이 스튜디오를 인수했는데 이게 유니버설의 첫 보금자리가 됐어요.

그 뒤로는 거의 러시였습니다. 1914년에는 폭스가, 1916년에는 골드윈과 셀즈닉이 포트리에 자리를 잡았어요. 메트로, 월드, 파테 같은 이름도 이 시기 포트리 촬영 기록에 등장합니다.

1918년에는 이 작은 동네에서 무성영화를 찍는 스튜디오가 11곳이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운타운 크기를 생각하면 솔직히 놀라운 숫자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클리프행어"라는 단어의 유래입니다. 1914년 연재 영화 "The Perils of Pauline"에서 펄 화이트가 팰리세이즈 절벽 끝에 매달리는 장면이 자주 나왔거든요.

원래 13편으로 기획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20편까지 늘렸다고 합니다. 다음 편이 궁금해서 미치게 만드는 그 수법의 원조가 우리 동네 절벽이었던 거죠.

그럼 왜 다 떠났을까요. 몇 가지가 한꺼번에 겹쳤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땅이 싸고 햇볕이 일 년 내내 좋았어요. 조명이 약하던 시절이라 해가 곧 장비였으니 이건 큰 차이였습니다.

여기에 1차 대전 중 석탄 부족이 터졌고, 수십 년 만의 혹한까지 겹쳐서 스튜디오들이 촬영을 줄여야 했어요. 1918년 독감 대유행이 마지막 한 방이 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 사이 할리우드에서는 1911년 10월, 네스터 컴퍼니가 선셋과 가워 모퉁이의 낡은 술집 건물을 빌려 첫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재밌는 건 이 회사를 세운 호슬리 형제도 원래 뉴저지 베이온에서 영화를 찍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에요.

할리우드 초창기를 연 사람들 중엔 허드슨강 이쪽에서 일을 배우고 넘어간 이들이 적지 않았던 셈입니다. 고향을 떠난 게 아니라 이사를 간 거라고 우겨보고 싶어지네요.

아쉬운 건 지금 포트리에 그 흔적이 거의 안 남았다는 점이에요. 스튜디오 건물은 대부분 사라졌고, 그 자리엔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섰어요.

그래도 2022년 10월, 보로가 직접 지은 배리모어 필름 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드루 배리모어의 할아버지 이름을 딴 곳인데, 영화관 겸 영화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2018년에 착공해서 4년 만에 완공됐다니, 동네 입장에선 꽤 공들인 프로젝트였던 셈이죠.

상영 프로그램도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이탈리아 영화제, 앨리스 기 블라쉐 여성 영화제 같은 기획전이 꾸준히 열려요.

앨리스 기 블라쉐는 솔락스라는 스튜디오를 포트리에 세운 여성 감독이었습니다. 이름 하나 알고 나니 동네가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퇴근길에 팰리세이즈 쪽으로 차를 돌려 절벽을 한번 내려다본 적이 있어요. 백 년 전 누군가는 여기서 줄 하나에 매달려 다음 주 관객을 붙잡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매주 월요일마다 그만둘까 말까의 절벽에 매달려 있는데요. 펄 화이트는 그래도 출연료라도 받았잖아요.

그래서 정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이번 주말엔 배리모어 필름 센터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나오는 길에 바닐라 라테 한 잔 들고 절벽 쪽 공원을 걸어볼 생각이에요.

할리우드가 화려한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의 첫 장이 매일 막히는 이 다리 옆에서 쓰였다는 걸 알고 나니, 출근길 정체가 아주 조금은 덜 억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