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프란 몇 가닥을 따뜻한 물에 불려두고 쌀을 씻고 있는데 한국에 계신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첫마디가 "너 국민연금 그거 어떻게 할 거냐"였습니다.
올해부터 국민연금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대충만 알고 있어서, 밥이 뜸 드는 동안 제대로 찾아봤습니다.
먼저 큰 그림부터요.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2025년 3월 20일 국회를 통과했고,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보험료율이에요. 9%에 머물던 보험료율이 2026년 9.5%로 오르고, 매년 0.5%포인트씩 올라 2033년에 13%가 됩니다.
받는 쪽도 바뀌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소득대체율은 2025년 41.5%에서 해마다 줄어 2028년 40%까지 내려갈 예정이었어요.
이번 개혁으로 2026년부터 43%로 한 번에 올랐습니다. 더 내고 조금 더 받는 구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하나 있어요. 국민연금공단 안내를 보면 올라간 43%는 2026년 1월 1일 이후 가입기간에만 적용됩니다.
이미 연금을 받고 계신 분들에게는 새 소득대체율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공단이 분명히 밝히고 있어요. 미국에서 한국 연금을 이미 받는 분이라면 이번 개혁으로 금액이 갑자기 늘지는 않는다는 얘기죠.
그 밖에도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법에 명시됐습니다. 출산 크레딧과 군복무 크레딧도 넓어졌고요.
출산 크레딧은 이제 첫째 아이부터 인정되고, 군복무 크레딧도 기존 6개월보다 길게 인정됩니다.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분이라면 나중에 수급 계산할 때 한 번 챙겨볼 만한 부분이에요.
자, 이제 미국 사는 사람 입장에서 정리해볼게요. 사람마다 상황이 달라서 세 갈래로 나눠보는 게 편합니다.
첫 번째는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재외국민으로 임의가입해 계속 보험료를 내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이번 개혁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요.
직장가입자는 회사와 반씩 나눠 내지만 임의가입자는 보험료를 전부 혼자 냅니다. 그러니까 올해 9.5%, 내년 10%로 오르는 몫이 그대로 본인 부담이에요.
대신 2026년 이후에 낸 기간은 43% 기준으로 계산됩니다. 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우려고 임의가입한 분이라면 득실을 다시 따져볼 타이밍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 몇 년 일하다 와서 더는 내지 않는 경우예요. 이분들은 보험료 인상과는 상관없고, 받는 금액도 대부분 2025년 이전 가입기간 기준이라 크게 달라질 게 없습니다.
이때 고민할 건 반환일시금입니다. 국적을 잃었거나 국외로 이주한 경우 그동안 낸 보험료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을 수 있어요.
청구 기한도 알아두세요. 반환일시금 소멸시효는 2018년 1월부터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습니다.
한미 사회보장협정 덕분에 미국 시민권자도 한국 국민과 같은 조건으로 반환일시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민권 따고 나서 이걸 잊고 사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세 번째는 한국과 미국 양쪽에 다 가입기간이 있는 경우입니다. 2001년 4월 발효된 한미 사회보장협정으로 두 나라 가입기간을 합산해서 연금 자격을 따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한국 기간만으로는 10년이 안 되고 미국 크레딧만으로도 부족할 때, 합쳐서 자격을 채우는 방식입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은 동네 소셜시큐리티 사무소를 통해 청구할 수 있다고 영사관 안내에 나와 있어요.
하나 더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외국 연금을 받으면 미국 소셜시큐리티가 깎이던 WEP 조항이 2025년 1월 사회보장공정법으로 폐지됐어요.
예전엔 한국 연금을 받으면 미국 연금이 줄어들까 봐 걱정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 부담은 사라진 셈입니다. 다만 한국 연금을 미국 세금 신고 때 어떻게 처리할지는 별개 문제예요.
반환일시금으로 받을지, 합산해서 연금으로 받을지는 나이, 국적, 가입기간, 세금 문제에 따라 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개인 상황에 따라 다르니 국민연금공단 국제협력 창구나 세무 전문가와 꼭 확인해 보세요.
찾아보면서 든 생각은 이거예요. 한국 뉴스는 대부분 한국에서 월급 받는 사람 기준이라 우리 같은 해외 거주자 얘기는 늘 한 줄로 끝나더라고요.
숫자만 보면 보험료 4%포인트 인상이 꽤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재정이 바닥난다는 얘기만 듣던 것보다는, 어떻게든 손을 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저라면 일단 국민연금공단 사이트에서 제 가입내역부터 조회하겠습니다. 몇 개월을 냈는지도 모른 채 고민하는 게 제일 비효율적이니까요.
그다음에 임의가입을 계속할지, 반환일시금을 받을지, 합산을 노릴지 정하면 됩니다. 어머니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통화를 끝내고 보니 밥은 노랗게 잘 물들어 있었습니다. 연금도 사프란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우러나는 거라, 미리 챙겨두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게임 같아요.

배숙희나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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