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는 왜 시골로 안갈까? 도시 도파민에 빠진 새들 - Chicago - 1

시카고 다운타운 광장이나 전철역 앞에 가면 비둘기들이 푸드닥거리며 떼로 몰려다닙니다.

그런데 미국 중서부 넓은 들판으로 한시간 정도 차몰고 나가보면 벌판에서는 비둘기가 안보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비바람을 피할 건물도 없고, 무엇보다 인간이 흘려주는 과자 부스러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둘기에게 황야는 아늑한 자연이 아니라 배달 음식도 편의점도 없는 오지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그리고 도심위 고층 건물의 처마와 다리 밑은 원래 비둘기가 살던 절벽과 비슷합니다.

거기에 햄버거 빵, 감자튀김, 피자 조각까지 사방에 널려 있으니 비둘기 입장에서는 굳이 시골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도시 비둘기가 '도시생활의 도파민에 절었다'는 농담도 나옵니다.

사람이 다가오면 두세 걸음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과자 봉지 소리만 나면 단체로 달려듭니다.

비둘기에게 자동차는 가깝게 지나가면 아슬아슬하게 피하면 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람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가 눈치를 보며 물러나는 모습은 거의 매일 반복되는 도시형 스릴 게임입니다.

비둘기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카지노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쫓아내지만, 어떤 사람은 빵을 던져줍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맛있는 보상이 떨어집니다.

언제 먹이가 나올지 모르는 이 불규칙한 보상이 비둘기들을 더욱 도시 생활에 빠져들게 한다는 유쾌한 해석도 가능합니다.

가만히 보면 도시 비둘기들은 사람을 꽤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빠르게 걷는 직장인은 그냥 보내고,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관광객에게는 슬쩍 접근합니다.

어린아이가 과자를 들고 있으면 몇 마리가 동시에 포위 작전에 들어갑니다. 눈빛만 보면 "한 조각만 떨어뜨려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비둘기를 도시의 골칫거리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인간과 비둘기의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비둘기를 사육해 식재료로 이용했고, 비둘기 요리는 비교적 귀한 음식으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통신 수단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전서구로 활용했고, 종교와 예술에서는 평화와 순결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런 비둘기가 현대에 와서는 지하철 입구에서 감자튀김 한 조각을 놓고 사람과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비둘기를 길들였다면, 지금은 비둘기가 인간을 길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시카고의 비둘기들은 추운 겨울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건물 틈과 고가철도 아래에서 바람을 피하고, 사람들이 버린 음식으로 끈질기게 살아갑니다.

영하의 날씨를 버티면서도 봄이 오면 다시 광장 한가운데를 차지합니다.

오늘도 시카고 비둘기들은 사람들 사이를 당당하게 걸어 다니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골에 왜 가? 여기는 매일 뷔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