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시카고에서 20년째 기름밥을 먹으면서 살고있는 평범한 가장 입니다.

이곳 시카고에서 수많은 엔진을 수리하면서 살아오다 보면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엔진 내구성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V8은 평생 쓸수있는 엔진이고, 4기통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제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수긍할 만한 기계공학적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우선 구조적인 차이입니다. 8기통 엔진은 실린더 수가 많아 같은 힘을 낼 때 각 실린더가 감당해야 하는 부하가 훨씬 적습니다.

예를 들어 프리웨이에서 시속 70마일로 정속 주행을 할 때 V8 엔진은 산책하듯 낮은 RPM에서 아주 부드럽게 작동합니다.

반면 4기통 엔진은 동일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회전수를 유지하며 더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죠.

8명이 나눠 들 짐을 4명이 나눠 드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당연히 부품에 쌓이는 피로도는 4기통 쪽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동 측면에서도 V8은 유리합니다. 폭발 행정이 빈번하게 이어지기에 진동이 적고 부품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해 줍니다.

4기통은 구조상 진동이 더 크게 발생하며 최근 유행하는 고출력 4기통 터보 엔진들은 좁은 공간에서 높은 열과 압력을 견뎌야 하므로 관리 조건이 훨씬 까다롭습니다.


운전자의 습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출력이 넉넉한 V8 차량은 급가속을 하거나 엔진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일 일이 적습니다. 엔진이 늘 '안전 구간' 안에서 작동하는 셈이죠.

반면 4기통 차량은 일상적인 합류나 추월 시에도 엔진의 힘을 쥐어짜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며, 이러한 부하의 누적이 수십만 마일 뒤에는 수명의 차이로 나타나게 됩니다.

실제로 이곳 미국에서 30만 마일, 40만 마일을 거뜬히 넘기는 픽업트럭들을 보면 대개 V8 엔진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차체는 부식되어도 엔진은 쌩쌩하게 살아있다"는 말은 V8엔진의 견고함 철저한 일상 정비와 만났을 때 현실이 됩니다.

이런 차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토요타 툰드라 (Toyota Tundra) 2007년식~2021년식 (특히 5.7L V8 모델)

- 렉서스 GX 460, 2010~2023년 (4.6L V8 엔진)

- 포드 F-150 (Ford F-150) 2011년식~현재 (5.0L V8 코요테 엔진)
- 쉐보레 실버라도 1500 (Chevrolet Silverado 1500) 2007년식~현재 (5.3L V8 엔진)
- GMC 시에라 1500 (GMC Sierra 1500) 2007년식~현재 (5.3L V8 엔진)
- 램 1500 (Ram 1500) 2009년식~2024년식 (5.7L Hemi V8 엔진)

그런데 솔직히 요즘 자동차 산업 흐름을 보면 썩 기분 좋지만은 않습니다. 예전에는 엔진이라는 게 "얼마나 오래 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얼마나 많이 팔 수 있느냐"가 우선이 돼버린 느낌이 된것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른바 aging technology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적당히 쓰고 다시 바꾸게 만드는 기술이 득세하는것 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다운사이징 엔진보면 대부분 고출력 터보 엔진 구조입니다. 배기량은 줄이고, 터보를 얹어서 출력은 높이고, 그 대신 내부 구조는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열은 더 많이 발생하고, 압력은 더 높아지고, 그걸 억지로 막아주는 각종 개스킷, 실링, 고무 호스는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열화되버리고 수명이 짧아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기술 발전인데 실제로는 소모품 교체 주기가 짧아지고 고장 포인트는 늘어난 구조입니다. 정비소 입장에서는 장사가 잘 되지만 차주 입장에서는 유지비 폭탄이 돌아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동차 회사들이 오래 안 가는 차를 만들어서 더 자주 바꾸게 만드는 구조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현대의 엔진 제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요즘의 4기통 엔진들은 정밀한 가공과 소재 혁신을 통해 15만 마일 이상도 견뎌냅니다. 반대로 아무리 훌륭한 V8 엔진이라도 정비 안해주고 오일 관리를 소홀히 하면 15만 마일도 넘기기 힘든 법입니다. 결국 기계의 수명을 결정짓는 최종 열쇠는 주인의 세심한 관리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