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늘면 웃음 코드까지 아메리칸 스타일이 되어간다 - Los Angeles - 1

테일러 톰린슨은 내가 유튜브에서 가끔 찾아보는 미국 여자 코미디언이다.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다 영어를 잘 못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코미디언이 있는 반면, 사람들이 왜 웃는지도 캐치가 안되는 코미디언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테일러 톰린슨이 딱 후자다.

말도 빠르지만 단어 자체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말투와 뉘앙스, 타이밍으로 웃기는 경우가 많다.

미국 문화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관객들은 빵 터지는데 나는 화면 보면서 "응? 뭐가 웃긴 거야?" 했다가 나중에 알아듣고 혼자 뒤늦게 웃을 때도 있다.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 아직 멀었구나 싶다.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공연은 영어를 알아듣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알아듣고 나니까 더 기가 막혔다.

장소부터 오리건주 포틀랜드다. 미국에서 포틀랜드 하면 워낙 자유분방하고 별난 사람들이 많다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공연 도중 어떤 관객이 자기 아버지 유골로 대마초 피울 때 사용하는 Bong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고, 여기서부터 한국 아줌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테일러도 처음에는 아버지 유골을 주문 제작한 Bong 안에 넣었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나 보다. 그래서 유골을 Bong 안에 넣은 거냐고 다시 물어본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아버지 뼛가루로 Bong 자체를 만들었단다. 어머나 세상에.

한국에서는 제사상에 생선을 어느 방향으로 놓느냐 가지고도 집안 어른들끼리 한마디씩 하는데, 아버지 유골로 대마초 기구를 만들었다니.

조선시대 유교 선비가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나는 여기서 이미 문화충격이 쎄게 느껴졌다.

아래 보이는 사진이 구글에서 찾은 사람유골이 들어간 커스텀 Bong이다.

영어가 늘면 웃음 코드까지 아메리칸 스타일이 되어간다 - Los Angeles - 2

뭔가 플라스틱이나 돌같은 재료를 섞어서 모양이 나온 대마초 피우는 Bong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여자가 아버지 유골로 Bong을 만든 이유를 들어보니 더 대단하다.

그 아버지가 평생 대마초를 피우던 사람이었단다.

이른바 lifetime stoner 였는데 딸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같이 대마초를 피워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라도 같이 피우고 싶어서 아버지 유골로 Bong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테일러 표정이 정말 웃긴다.

마치 "어머, 세상에 이런 효녀가 다 있네" 하는 감동받은 얼굴을 하더니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If you don't like this story, you've had it too good."

이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든다면 당신은 인생을 너무 (쉽게) 곱게 살아왔다는 식이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서 자기는 이게 Pixar 스토리 같다고 한다.

세상에, 아버지 유골로 Bong 만든 이야기를 이제는 아버지와 딸의 못다 한 사랑을 그린 감동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여기서 결국 빵 터졌다.

가만히 생각하면 웃을 일이 아니다. 한국 사람 기준으로 문화충격이 하나도 아니고 줄줄이 나온다.

대마초 나오지, 아버지 유골 나오지, 그 유골로 Bong을 만들지, 거기에다 그걸 죽은 아버지와 함께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지.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부녀간의 사랑 이야기까지 된다.

한국 정서로 하나씩 따져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고,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소리가 나올 이야기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이 영상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LA에서 미국 생활을 20년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이 변했나 보다.

예전 같았으면 "미국 사람들은 정말 이해를 못 하겠어" 하고 끝났을 텐데 이제는 테일러가 Pixar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왜 저 말이 웃긴지를 알아듣고 먼저 웃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 유골로 Bong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건 미국에서 20년이 아니라 200년을 살아도 못할 것 같다.

다만 미국 코미디를 오래 보다 보니 알게 된 게 있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나 정상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서 웃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아버지 유골로 그걸 만들었다고? 세상에 미쳤나 봐."

여기까지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는 한국 아줌마라면,

"근데 잠깐만, 생각해 보니 아빠랑 같이 한 대 피우고 싶었던 거잖아. 어머, 효녀네."

여기까지 가버리는 게 어느새 미국식 농담에 익숙해진 나다.

외국에서 오래 살면 영어만 느는 줄 알았다. 음식도 바뀌고 생활습관도 바뀐다지만, 웃음 코드까지 이렇게 조금씩 바뀔 줄은 몰랐다.

미국에서 20년을 살고 보니 이제야 느낀다.

사람은 이민을 오지만, 어느 순간 웃음 코드도 같이 이민을 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