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LA에 거대한 기획사를 하나 차린다.
아이돌이 될만한 재목인 짱짱한 13살 미만 미국 아이들을 뽑는다.
학교 끝나면 춤 세 시간, 보컬 두 시간, 랩 한 시간, 체력훈련 한 시간. 매달 평가해서 성적이 나쁘면 데뷔조에서 탈락시킨다.
"오늘부터 탄수화물 줄여." "이번 달에 5파운드 빼야 해." "휴대폰 그만 보고 게임이나 문자하지 마."
한국 아이돌 이야기를 많이 본 사람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은 설정이다.
그런데 이걸 미국에서 한다고 상상하면 갑자기 장르가 바뀐다.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변호사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한국의 모든 기획사가 이렇게 운영된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의 극단적인 연습생 이미지를 미국에 그대로 옮겨본 상상이다.
미국에서도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위법 여부는 계약 형태와 나이, 근무시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도 첫날부터 골치 아픈 것이 미성년자 노동 문제다.
미국에서 14살짜리에게 "너는 연습생이니까 직원은 아니야"라고 이름만 바꾼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면서 회사의 사업을 위해 장시간 훈련시킨다면 노동법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실제 공연이나 촬영까지 들어가면 주별 아동 연예인 관련 규정까지 봐야 한다.
그리고 학교 문제가 등장한다. "이번 컴백 준비 때문에 오늘 학교 가지 말고 안무 연습하자."
한국 드라마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일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부모가 먼저 묻는다. "우리 애 수업은요?"
촬영과 공연 때문에 학교를 빠지는 아동 연예인을 위한 교육시간이나 스튜디오 교사 같은 제도를 요구하는 주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미성년 연예인을 본격적으로 굴리기 시작하면 회사에는 매니저만 필요한 게 아니라 변호사와 회계사, 교육 담당자까지 따라붙게 된다.

두 번째는 다이어트다. 연습생 세워놓고 메니져가 아디들 한 명씩 보면서 말한다.
"너 4파운드 감량." "너는 얼굴이 부었어." "너는 허벅지 조금 더 빼자."
여기서 미국 부모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까.
특히 미성년자를 상대로 체중과 외모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거나 건강에 위험한 식사 제한을 강요한다면 노동환경, 차별, 건강과 안전, 계약 문제 등이 얽힐 수 있다.
모든 체중 관리 지시가 곧바로 불법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영역이다.
세 번째는 합숙생활이다.
기획사가 집 하나 빌려서 15살짜리 여섯 명을 넣어놓고 매니저가 생활 전체를 관리한다고 해보자.
몇 시에 자는지, 뭘 먹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휴대폰을 얼마나 사용하는지까지 회사가 관리한다.
한국에서는 연습생 합숙이라는 말 하나로 이해되던 문화가 미국으로 오면 질문이 끝도 없이 나온다.
보호자는 누구인가? 밤에는 누가 감독하는가? 아이들이 아프면 누가 책임지는가? 보험은 들었는가? 주정부 허가받은 업체인가?
다른 주에서 데려온 아이는 학교를 어떻게 다니는가? 부모가 갑자기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계약은 어떻게 되는가?
회사 입장에서는 아이돌 그룹 하나 만들려다가 작은 기숙학교 업체를 운영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네 번째는 연애금지와 사생활 관리다.
"데뷔 후 3년 동안 연애 금지."
미국의 20대 연습생에게 이런 계약서를 내밀면 계약의 집행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한다.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더 복잡하다.
거기에 회사가 연습생 휴대폰을 검사하고 개인 메시지를 확인하는 수준까지 간다면 개인정보와 사생활 문제가 붙는다.
대표가 "아이돌 이미지 관리입니다"라고 말해도 미국 변호사는 아마 계약서부터 다시 가져오라고 할 것이다.
다섯 번째는 돈이다. 이게 제일 재미있다.
"우리가 너한테 보컬, 댄스, 숙소, 의상 비용으로 20만 달러를 투자했으니까 데뷔한 다음 갚아."
한국 연예산업에서 익숙하게 거론되던 투자비 회수 구조를 미국에서 그대로 만들려 하면 임금, 비용 공제, 미성년자 계약, 계약의 공정성 등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어린 연예인이 번 돈의 일부를 보호하도록 하는 제도를 둔 주도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제일 무서운 장면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연습생이 울면서 회사를 나가는 장면이 아니다.
엄마가 변호사와 같이 들어오는 장면이다.
"제 딸과 관련된 계약서, 연습시간 기록, 촬영 스케줄, 급여기록, 식단 지시, 문자와 이메일 전부 보존해 주세요."
이 순간 아이돌 제작 프로젝트가 디스커버리 프로젝트로 바뀐다.
생각해보면 K팝 시스템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엄청난 반복훈련이다. 노래하면서 칼군무를 맞추는 수준은 하루 이틀 연습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K팝식 그룹을 못 만드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방법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훈련시간을 명확하게 관리하고, 미성년자는 교육과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부모와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건강관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비용과 수익 배분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재미있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식으로 아이돌 한 팀 만들 때 연습생 12명이 필요하다면 미국에서는 그 옆에 부모 12명, 변호사 몇 명, 회계사, 교사, 영양사, 아동보호 담당자까지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표가 연습실 문을 열고 외친다. "자, 오늘부터 지옥의 트레이닝 시작이다!"
그러면 뒤에서 변호사가 조용히 팔을 잡는다. "대표님, 잠깐만요. 그 표현부터 쓰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마 미국판 K팝의 첫 번째 훈련은 춤이 아닐 것이다. 미국 법률 컴플라이언스 교육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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