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에 살다가 다시 보니 더 신기한 영화, 히치콕의 사이코 - Phoenix - 1

피닉스에 20년 살고 나서 다시 보니 더 신기한 영화, 히치콕의 사이코

피닉스에 살면서도 몰랐던 사실이 히치콕의 명작인 영화 사이코(Psycho)가 바로 피닉스 배경이라는 것입니다.

사이코 하면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외딴 모텔과 샤워실 그리고 노먼 베이츠뿐이었거든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음침한 모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지 피닉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에 개봉한 영화를 다시 틀어보니 시작부터 Phoenix, Arizona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날짜와 시간까지 표시되는데 1959년 12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3분입니다.

카메라는 당시 한적하고 시골분위기 좀 풀풀 나는 피닉스 다운타운을 천천히 훑다가 어느 건물의 창문으로 들어갑니다.

그 방에 있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 마리온 크레인입니다.

피닉스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포영화보다 옛날 우리 동네 기록영상을 보는 기분부터 듭니다.

지금의 피닉스는 거대한 도시입니다. 다운타운에는 높은 건물들이 올라가 있고 끝없이 이어지는 프리웨이에 차가 가득합니다.

메트로 지역 전체로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졌죠.

그런데 영화 속 1960년의 피닉스는 전혀 다릅니다.

건물도 낮고 도시 너머로 산과 황량한 땅이 훨씬 가깝게 느껴집니다.

지금 제가 매일 보는 피닉스와 비교하면 같은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피닉스에 살다가 다시 보니 더 신기한 영화, 히치콕의 사이코 - Phoenix - 2

영화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마리온은 피닉스의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 여성입니다.

어느 날 고객이 가져온 4만 달러의 현금을 은행에 입금하라는 지시를 받는데, 마리온은 순간적으로 그 돈을 가지고 피닉스를 떠나버립니다.

지금 돈으로 생각하면 상당히 큰돈입니다. 그때부터 영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피닉스 직장 여성의 이야기였는데 차를 몰고 도시를 벗어나면서 점점 불안해집니다.

경찰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고 뒤에서 따라오는 차만 보여도 신경이 쓰입니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는 밤길에서 우연히 들어간 곳이 그 유명한 베이츠 모텔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이코가 시작됩니다.

재미있는 건 영화가 6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무섭다는 것입니다.

요즘 공포영화처럼 피가 잔뜩 나오거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괴물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계속 불편하게 만듭니다.

특히 그 유명한 샤워 장면은 내용을 다 알고 보는데도 긴장됩니다.

음악까지 들으면 왜 이 영화가 영화사에 남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돈을 들고 도망가는 것보다 자꾸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기가 그때 피닉스라고?"

지금 우리가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상상하기 힘든 이 도시에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사막 위에 집과 쇼핑센터와 프리웨이가 끝없이 들어서기 전의 피닉스를 영화 속에서 잠깐이나마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래된 영화를 보는 재미가 이런 건가 봅니다.

누군가에게 사이코는 역사적인 공포영화지만 피닉스에 사는 사람에게는 1960년 직전의 도시 모습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타임머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영화를 보니 사이코의 주인공은 마리온이 아니라, 어쩌면 옛날 피닉스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