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보관은 무적이 아니다" 햄·소시지·고기 냉장 유통기한 - Phoenix - 1

애 키우고 살림하다 보면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겨요.

"이걸 왜 버려. 이것도 다 돈인데."

냉장고에 남은 음식 버릴 때는 갑자기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우리 외할머니 조선시대 절약정신이 살아나는거죠.

한 2주전에 냉장고 구석에서 개봉된 소시지 남은것을 발견했을때 버려야 했는데...

"어머, 이게 여기 있었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주일은 족히 넘은 것 같아요.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켜야 하는데, 냄세는 이상없고 말라붙은 소세지 색깔이 조금 수상한 정도였어요.

그래서 제가 무슨 외과의사라도 된 것처럼 생각했어요.

"위에만 잘라내면 괜찮지 않을까?"

상한 부분만 수술하면 나머지는 문제 없을 거라는 나름 자신감이 생기는 희한한 논리였어요.

위쪽을 제법 두껍게 잘라내고 다시 냄새도 맡아봤는데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 바짝 구우면 세균이고 뭐고 다 죽겠지."

프라이팬에 올려서 바짝 구웠어요. 계란까지 하나 부쳐서 밥하고 먹으니까 또 맛은 멀쩡해요.

아들도 옆에서 몇 조각 집어먹었고 저는 아깝다고 나머지를 거의 다 먹었어요.

그리고 몇 시간 뒤 정확하게 먹은 양만큼 벌을 받았어요.

아들은 배가 좀 아프다고 화장실 몇 번 갔다 오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는 차원이 달랐어요.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배가 뒤틀리고 식은땀이 나고.

침대에 누웠다가 화장실, 다시 누웠다가 화장실. 나중에는 먹은 것도 없는데 배에서는 계속 비상벨이 울리는 거예요.

그제야 생각났어요.

"아이고, 그 소세지 먹은게 잘못된 거구나."

이번 일을 겪고 찾아보니 제가 냉장고를 너무 믿었던 거예요.

냉장고가 음식 시간을 딱 멈춰주는 타임머신은 아니더라고요.

40°F, 약 4°C 이하에서는 많은 세균이 번식하는 속도를 늦춰주는 것이지 음식이 영원히 안전해지는 건 아니에요.

특히 소세지나 햄은 개봉 전과 개봉 후가 완전히 달라요.

개봉한 다음 냉장고에서 3~4일 정도 까지만 안전한 보관기간으로 봐요.

베이컨은 약 7일, 생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3~5일, 생 다짐육이나 닭고기는 1~2일, 이미 조리한 고기 음식도 보통 3~4일 정도예요.

그리고 제가 했던 "위에만 걷어내면 되겠지" 이것도 위험한 생각이에요.

햄이나 소시지처럼 수분이 있는 음식은 겉만 잘라낸다고 나머지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어요.

냄새가 괜찮고 색깔이 멀쩡하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고요.

더 중요한 건 "바짝 구우면 괜찮다"는 생각이에요.

열을 충분히 가하면 많은 세균은 죽지만 이미 음식에서 만들어진 일부 독소는 열에 강해서 조리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오래된 스팸을 아무리 바짝 굽는다고 새 스팸으로 환생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햄이나 소시지는 지방도 들어 있어서 개봉 후 공기와 계속 접촉하면 산화가 진행돼 맛과 냄새가 변할 수도 있어요

산패와 식중독은 같은 현상은 아니지만 오래된 가공육을 굳이 먹고 모험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은 똑같다고 해요.

결국 몇 달러 아끼겠다고 하루를 통째로 날렸어요.

이제 냉장고에서 오래된 음식 발견하면 저 자신에게 딱 한마디 하려고요.

"언제 열었는지 기억 안 나지? 그럼 버려."

피닉스에서는 여름에 밖에 나가도 110도예요.

잘못 먹으면 배 속까지 난리가 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