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영화나 시트콤을 보면 십대 아이 방문에 "노크하고 들어와" 팻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장면이 꼭 한 번씩 나온다. 방 안은 온통 자기 취향대로 꾸며져 있고, 부모조차 함부로 열지 못하는 공간처럼 그려진다.
지금 미국에서는 아이가 크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게 워낙 당연한 일이라, 이게 그렇게 오래된 풍습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데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좀 다르다. 미국에서 아이가 혼자 방을 쓰는 게 흔한 일이 된 건 길게 잡아도 100년이 채 안 된다.
1930년 백악관 아동보건위원회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그 무렵 자기 방을 가진 십대는 전체의 32.7퍼센트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다수 아이들은 형제자매와 방을 나눠 쓰거나, 부모와 한 방에서 자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20세기 초만 해도 대도시 이민자 가정은 방 한두 개짜리 좁은 집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게 오히려 흔한 풍경이었다.
19세기 전반 도시 중산층 가정 일부에서 아이 방을 따로 두려는 시도가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편이 넉넉한 집안의 이야기였다.
그 시절 대부분 가정은 하숙인을 들이거나 입주 가사도우미를 두는 일도 흔해서, 방을 나눌 여유 자체가 없었다.
흐름이 완전히 바뀐 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다.
1944년 제정된 제대군인원호법 덕분에 참전 군인들이 낮은 금리로 집을 살 수 있게 됐고, 도시를 벗어나 교외에 넓은 집을 짓는 붐이 일었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게 뉴욕 인근에 들어선 레빗타운 같은 대규모 주택단지다. 비슷하게 생긴 집 수천 채가 한꺼번에 올라갔는데, 방이 서너 개씩 딸린 표준형 주택이 중산층 가정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
집이 넓어지니 형제자매끼리도 각자 방을 쓸 여지가 자연히 생긴 것이다.
여기에 가족 규모가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자녀 수가 적어지니 한 집에서 나눠 써야 할 방도 자연히 줄었다.
하숙을 치거나 입주 가사도우미를 두던 관행도 20세기 들어 점차 사라졌다.
1964년 조사에서는 자기 방을 가진 십대 비율이 65퍼센트까지 올라갔고, 1998년에는 82퍼센트에 이르렀다.
불과 60여 년 사이에 소수의 특권이던 것이 다수의 기본값으로 바뀐 셈이다.
여기에 육아 전문가들의 조언도 힘을 보탰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려면 형제자매와도 분리된 자기만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 무렵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이 변화를 아예 책 한 권으로 정리한 역사학자도 있다. 제이슨 리드라는 학자가 쓴 책 제목이 '내 방에서 나가'일 정도로, 십대의 방문 걸어 잠그기는 미국 문화의 상징 같은 사건이 됐다.
냉전 시기에 들어서는 십대들이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자기 방을 직접 꾸미기 시작했다. 포스터를 붙이고 가구를 바꾸면서, 방은 곧 그 아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 됐다.
돌이켜보면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 방을 나눠 쓰던 시절은 미국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비슷했고, 오히려 지금처럼 아이마다 방 하나씩 내주는 쪽이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훨씬 예외적인 풍경에 가깝다.
결국 이 변화의 밑바닥에는 가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볼지, 개인들의 모임으로 볼지에 대한 가치관의 이동이 깔려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이 흐름을 들여다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게 아이의 독립심을 키우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됐겠지만, 그만큼 온 가족이 한방에 모여 지내던 시절의 끈끈함은 옅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모와 자식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지금 풍경은, 어찌 보면 미국식 개인주의가 집 구조에까지 스며든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나는 아이에게 온전히 자기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쪽이다. 다만 그 방문이 가족과의 거리를 재는 잣대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Thunder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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