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How are you"라 묻고 답을 안 듣는 이유 - Colorado Springs - 1

마트에서 계산할 때나 동네를 걷다가 마주친 이웃에게서 "How are you?"라는 인사를 들어본 적 있으실 거예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려고 준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을 떼려는 순간 상대는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걸음을 옮기고 있더군요. 질문을 던져놓고 대답은 듣지 않는 셈이니 처음엔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지난주에도 동네 카페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리스타가 웃으며 안부를 묻더니 제가 좋다고 답하기도 전에 다음 주문을 받고 있더라고요.

그 자리에 잠깐 멍하니 서서,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런 순간마다 여전히 조금은 낯섭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무례함과는 거리가 먼 미국식 인사 습관인 것 같아요. "How are you"는 질문이라기보다 인사말에 더 가깝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표현이 원래부터 형식적인 인사는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1600년대에는 "How do you do"라는 말이 실제로 상대의 건강과 안부를 진지하게 묻는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질문은 실질적인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관용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그저 상대를 알아봤다는 신호, 말하자면 당신을 봤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하죠.

언어학에서는 이런 표현을 친교적 표현이라고 부릅니다. 인류학자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가 1923년 논문에서 처음 이 개념을 제시했고, 이후 로만 야콥슨이 1960년에 언어 기능 이론으로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고 해요.

즉 이런 인사는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거죠. 내용보다는 관계를 다지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도 영국에서는 "You alright?"이라는 말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표현은 다르지만 대답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미국의 인사법과 닮아 있는 셈이에요.

반대로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안부를 묻기보다 가벼운 목례나 눈인사로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죠.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사회마다 서로를 알아봤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문화를 겪으면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 사람들의 성향이 인사말에도 묻어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눈을 마주치고 짧게라도 안부를 건네는 게, 아예 인사를 생략하는 것보다는 다정하지 않나요.

가게 점원이든 병원 접수처 직원이든, 스쳐 지나가면서도 안부를 묻는 그 짧은 순간이 은근히 하루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대답을 안 듣더라도 물어봐 주는 것 자체에 마음이 담겨 있는 셈이니까요.

물론 처음 이 나라에 온 분들이라면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머쓱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짧은 인사가 무심한 형식이 아니라 나름의 다정함이라는 걸 알기에 저도 편하게 웃으며 받아치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What's up"처럼 더 캐주얼한 표현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결국 세대가 바뀌어도 형식만 달라질 뿐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비슷하게 이어지는 셈이죠.

결국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을 건네는 순간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오늘도 누군가 스쳐 지나가며 안부를 묻는다면, 정색하고 대답을 준비하기보다 가볍게 웃어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