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들이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차리는 진짜 이유 - Cleveland - 1

동네를 걷다 보면 여름마다 꼭 마주치는 풍경이 있어요. 마당 앞에 종이 박스로 만든 테이블을 놓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레모네이드 1잔에 1달러라고 써 붙인 아이들 가판대요.

저는 이걸 볼 때마다 궁금했어요. 왜 하필 레모네이드일까, 그냥 만들기 쉬운 음료라서 그런가 싶었거든요.

근데 찾아보니 이 풍경에는 생각보다 오래된 배경이 있더라고요. 기록상 가장 오래된 레모네이드 가판대는 1839년 뉴욕에서 등장했다고 해요.

처음부터 낭만적인 여름 놀이는 아니었어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레모네이드를 팔던 게 시작이었으니까요.

이게 지금처럼 기특한 어린이 활동이라는 이미지로 바뀐 데는 계기가 있어요. 1921년 에드워드 복이라는 인물의 자서전이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그 책에 어릴 적 레모네이드 장사 일화가 담겨 있었거든요.

타이밍도 잘 맞았어요. 1918년 무렵 미국 모든 주가 의무교육법을 갖추면서 여름방학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았고, 학교 안 가는 몇 달 동안 아이들이 할 만한 일로 레모네이드 장사가 딱 들어맞았던 거죠.

그러다 이 소박한 여름 놀이가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갖게 된 사건이 있어요. 바로 알렉스 스캇이라는 여자아이 이야기예요.

소아암을 앓던 알렉스는 2000년 자기 집 앞마당에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차렸고, 하루 만에 2000달러를 모았어요. 그 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2004년 여덟 살에 세상을 뜰 때까지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가판대가 이어지면서 기부금이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해요.

알렉스가 떠난 이듬해 가족들은 알렉스의 레모네이드 재단을 세웠어요. 지금까지 누적 기부액이 3억 달러를 넘었고, 소아암 연구 지원 건수도 1500건을 넘는다고 하니 동네 꼬마들 장난 같던 가판대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네요.

비슷한 시기 이걸 아예 정식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든 사람도 있어요. 2007년 휴스턴의 사업가 마이클 홀트하우스가 레모네이드 데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시작한 거예요.

첫해 휴스턴에서만 2600개 가판대가 열렸고, 지금까지 15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고 해요. 목표 세우기부터 예산 짜기, 이익 계산까지 배우니 그냥 음료 장사가 아니라 미니 경영 수업인 셈이죠.

근데 여기서 좀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어요. 이렇게 미담으로 포장된 레모네이드 가판대가 실제로는 법적으로 꽤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는 거예요.

덴버에서는 형제가 차린 가판대가 125달러짜리 영업 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에 철거당한 적이 있어요. 이미 자선단체에 200달러를 기부한 뒤였는데도 그랬다니 좀 씁쓸하죠.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에서는 아이들 여섯 명이 무허가 영업이라는 이유로 500달러짜리 딱지를 받은 적도 있어요. 이런 사례가 쌓이자 아예 법을 바꾸는 주들이 나왔고요.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벗은 미성년자 레모네이드 가판대에 허가증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는 법에 서명했어요. 조지아주 상원도 레모네이드 가판대 법을 52대 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죠.

솔직히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좀 황당했어요. 애들 몇 명이 여름에 레모네이드 파는 걸 막으려고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게, 미국 사회가 규칙을 다루는 방식을 은근히 잘 보여주는 예시 같더라고요.

결국 레모네이드 가판대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하나로 설명이 안 돼요. 여름방학이라는 시간, 자본주의를 놀이로 배우는 창구,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픈 아이를 기억하는 방식까지 다 겹쳐 있는 거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중에서 알렉스 재단 이야기가 제일 오래 남더라고요. 아이 손에 들린 종이컵 하나가 이렇게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면, 별거 아닌 여름 풍경도 다시 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