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이 영어 이름을 만들던 이유, 요즘은 안 만든다 - Cresskill - 1

한인 모임에 가보면 요즘 꽤 재미있는 장면을 봐요. 예전에는 서로 "제니", "마이크" 하고 영어 이름으로 인사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저는 정우예요" 하고 한국 이름을 그대로 말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어요.

이 변화가 궁금해서 이민자들이 영어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을 한번 찾아봤어요. 알고 보니 이 관행 자체가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더라고요.

이민자 이름 얘기가 나오면 꼭 따라오는 게 엘리스 아일랜드 괴담이에요. 이민국 직원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마음대로 바꿔 적었다는 얘기,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래요.

당시 승선 명부에는 이름이 이미 다 적혀 있었고, 심사관은 그 명부와 대조만 했을 뿐 이름을 새로 적는 일은 없었다고 해요. 결국 이름을 바꾼 건 이민국이 아니라 이민자 자신들이었던 거예요, 대부분 나중에 시민권을 받는 과정에서요.

연구를 보면 1820년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민자 가정이 미국에 머문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녀에게 외국식 이름 대신 미국식 이름을 지어주는 경향이 뚜렷했대요. 학자들은 이걸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동화 과정의 하나로 해석하더군요.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이 땅에 뿌리내리겠다는 마음을, 이름으로 표현한 셈이죠.

그런데 이 속도가 출신 나라마다 꽤 달랐어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출신들이 가장 빨리 미국식 이름을 받아들였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출신이 그 뒤를 이었는데, 러시아계와 핀란드계는 상대적으로 가장 느렸다고 해요.

중국계 이민자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이유가 섞여 있었어요. 1882년부터 1943년까지는 중국인의 미국 이민 자체를 금지하는 배척법이 시행됐고, 그 시기 반중 정서 속에서 폭력 사건까지 벌어졌거든요.

그런 분위기에서 이름을 바꾸는 건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 전략에 가까웠던 거예요.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덜 이국적으로 들리는 이름을 가진 이민자 자녀들이 학교를 더 오래 다녔고, 소득도 더 높았고, 실업률도 더 낮았대요.

요즘 말로 하면 이름 때문에 이력서 단계에서부터 손해를 보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뜻이겠죠.

한인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죠. 회사나 학교에서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대신 부르기 편한 영어 이름을 따로 만들어 쓰는 게 오랫동안 당연한 관행이었어요.

편하긴 했겠지만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이 좀 애매하다고 생각해요. 부르기 쉬우라고 만든 이름인데, 그 이름을 쓰는 순간 원래 나를 조금씩 지우는 느낌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재미있는 건 요즘 한국 회사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반대 흐름도 있다는 거예요. 위아래 없는 수평 문화를 만든다며 직원들끼리 영어 이름으로 부르게 하는 IT 기업들이 늘었잖아요.

이민자들은 원래 이름을 되찾아가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다들 새 영어 이름을 만드는 셈이니, 생각해보면 묘하게 엇갈리는 흐름이죠.

그런데 미국 쪽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어요. 2000년대 중반 뉴욕타임스가 미국 이민귀화국 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그해 귀화한 약 70만 명 중에서 이름을 바꾸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16퍼센트에 그쳤어요.

나머지 대부분은 자기 원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거죠.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때 영어 이름으로 살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다시 원래 이름을 되찾는 경우도 늘고 있대요. 자기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오히려 멋있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된 거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커지고, 소셜미디어에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달라는 목소리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을 거예요.

스타벅스 컵에 이름 적을 때도 굳이 영어식으로 바꿔 말하지 않고 원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주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비슷한 흐름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흐름이 반가워요. 이름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첫 조각인데, 발음이 조금 어렵다고 굳이 숨길 필요는 없잖아요. 이왕이면 당당하게, 내 이름 그대로 소개하는 게 진짜 자신감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