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조심해야 하는 말 “내가 누군지 알아?” - Chicago - 1

"내가 누군지 알아?"

예전에는 이 말이 꽤 무서운 말이었다.

빽이 있어서 (ㅋ) 높은 사람을 안다거나, 어디 힘 있는 조직에 있다거나, 전화 한 통이면 뭔가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을 들으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그러게요. 당신도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조심해야겠네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그렇다.

시카고에 살면서 가끔 식당이나 마트,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본다.

예전 같으면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고 욕 몇 마디 하고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주변에서 슬그머니 휴대폰부터 꺼낸다.

싸움을 말리는 게 아니다. 촬영부터 한다. 그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내가 화가 나서 내뱉은 10초짜리 말이 누군가의 휴대폰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영상이 틱톡이나 유튜브, 페이스북, 동네 커뮤니티에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생각보다 사람을 잘 찾아낸다는 것이다.

영상 하나 올라오면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댓글이 달린다. 누군가는 직장을 알아내고, 누군가는 가게를 찾아내고, 누군가는 예전에 올린 사진까지 찾아낸다.

회사 사장이라면 회사 이름이 나오고, 전문직이면 사무실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싸울 때도 사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는 것보다 내가 누군지 밝혀지는 게 더 무섭다.

나도 50대가 되고 나니 젊었을 때와 달라진 게 있다. 운전하다 누가 끼어들어도 예전처럼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물론 속으로는 한마디 한다.

"저 인간 운전 참 희한하게 하네." 그런데 거기까지다.

굳이 창문을 내리고 따질 필요가 없다. 시카고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난다.

내가 화를 낸다고 그 사람 운전 습관이 오늘부터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괜히 서로 차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하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위험만 커진다.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식당에서 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아파트 주차장에서 싸우거나, 지하철에서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영상 하나로 전국에 퍼진다.

예전에는 그 자리에 있던 열 명만 알았던 일이 이제는 다음 날 수십만 명이 볼 수도 있다.

특히 사업하는 사람은 더 조심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회사에서는 점잖은 사장이고 고객에게 친절한 사람이어도 밖에서 화가 나서 이상한 행동을 한 장면 하나가 찍히면 사람들은 그 30초로 나를 판단한다.

20년 동안 쌓은 평판과 30초짜리 영상이 싸우는 이상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참는 사람이 손해 본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오히려 참는 사람이 계산이 빠른 것이다.

마트 계산대에서 누가 새치기를 했다고 내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누가 내 자리를 먼저 차지했다고 내 재산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식당 직원이 조금 불친절했다고 그 자리에서 반드시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안 들면 매니저에게 차분하게 말하면 되고, 정말 싫으면 다음부터 안 가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세상에는 이겨서 좋은 싸움보다 시작하지 않아서 좋은 싸움이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