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식곤증이 트립토판 탓이 아닌 진짜 이유 - Augusta - 1

추수감사절이 이제 18일 남았습니다. 올해도 어딘가의 거실에서는 누군가 소파에 늘어져 이렇게 말할 겁니다. "It's the tryptophan."

저도 미국 와서 처음 초대받은 추수감사절 저녁에 그 말을 들었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길래 상식인 줄 알았어요. 과학 용어가 하나 붙으니 더 믿음이 갔던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칠면조를 범인으로 모는 건 증거가 약합니다. 오늘은 이 오해를 순서대로 뜯어보겠습니다.

트립토판은 필수 아미노산입니다. 몸에서 만들지 못해 음식으로 먹어야 하고, 뇌에서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을 만드는 재료로 쓰입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이에요. 문제는 그다음 단계입니다.

우선 양부터 볼까요. 칠면조 3온스에 든 트립토판은 250~310mg으로 소개됩니다. 수면 보조 목적의 트립토판 보충제는 한 번에 1,000~5,000mg을 담고 있다고 하니,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죠.

칠면조가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닙니다. Fox News가 인용한 USDA 수치로는 조리한 100g 기준 닭고기가 362mg, 칠면조가 252mg이었습니다.

물론 부위와 자료에 따라 순서는 바뀝니다. 칠면조가 닭보다 조금 많다는 자료도 있어요. 다만 "평범한 가금류 수준"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체다 치즈와 말린 콩도 제가 찾아본 자료들에서 칠면조와 비슷하거나 더 높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치즈 샌드위치 먹고 졸리다고 트립토판 탓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이쯤 되면 칠면조만 억울한 겁니다.

더 결정적인 건 뇌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트립토판은 혈액에서 뇌로 넘어갈 때 운반체를 타야 하는데, 다른 아미노산들도 같은 운반체를 씁니다.

쉽게 말해 좌석이 정해진 셔틀버스에 여러 승객이 몰리는 상황이에요. 단백질 음식을 먹으면 트립토판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경쟁자도 같이 늘어납니다. 그러니 칠면조 한 접시가 뇌의 트립토판을 확 올려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진짜 원인은 뭘까요.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꼽는 건 식사 자체의 규모입니다. Boston University의 Joan Salge Blake 교수도 트립토판 이론은 생리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쪽입니다.

칼로리컨트롤카운슬은 추수감사절 저녁 한 끼를 3,000칼로리로, 전후 간식과 술까지 합치면 4,500칼로리로 추정했습니다. 다만 이 숫자에는 반론도 있어요. 뉴욕타임스 기자 Tara Parker-Pope가 2012년에 최대한 무겁게 차려 계산했더니 2,486칼로리였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 평소 저녁과는 차원이 다른 양입니다. 위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졸음과 관련 있다는 설명이 있고, 같은 부피의 물보다 고형식이 더 졸리게 했다는 연구도 소개됩니다.

흔히 듣는 "피가 전부 위장으로 몰려서 졸리다"는 설명은 근거가 약한 편입니다. 저도 오래 믿었던 말이라 조금 민망하더군요.

두 번째 용의자는 시계입니다. 우리 몸의 각성 리듬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 한 번 떨어집니다. 먹든 안 먹든 내려가는 구간이에요.

그런데 많은 집에서 추수감사절 식사를 바로 이 시간대에 합니다. 원래 졸린 시간에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는 거죠. 범인을 찾는다면 이 조합이 훨씬 유력합니다.

세 번째는 술입니다. 알코올은 중추신경 억제제라 그 자체로 졸음을 부릅니다. 와인 두어 잔을 칠면조 탓으로 돌리는 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1971년 MIT의 Fernstrom과 Wurtman이 Science에 쥐 실험을 발표했는데, 탄수화물을 먹인 쥐의 뇌에서 세로토닌이 늘었습니다.

탄수화물이 인슐린을 부르면 경쟁 아미노산들의 혈중 농도가 떨어지고, 트립토판이 뇌로 들어가기 쉬워진다는 설명입니다. 반대로 단백질을 함께 먹이면 이 효과가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트립토판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맞다면, 공로는 칠면조보다 으깬 감자와 파이 쪽에 가깝습니다. 물론 쥐 실험을 사람의 명절 식탁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트립토판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도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 L-트립토판 보충제는 불면증 등에 널리 쓰였습니다.

그러다 1989년 호산구증가근육통증후군이 집단 발생했고, FDA는 그해 11월 11일 복용 중단을 경고했습니다. 최소 1,500건이 보고됐고 사망자는 자료에 따라 31명에서 37명 이상까지로 집계됩니다. 대부분 일본 Showa Denko 제품으로 추적됐어요.

FDA의 판매 제한은 2001년에야 완화됐습니다. 요즘 다시 쉽게 살 수 있지만, 챙겨 드실 분은 먼저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대중문화가 한몫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1997년 Seinfeld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들이 여자친구에게 칠면조와 와인을 잔뜩 먹여 재워놓고 그녀의 장난감 컬렉션을 갖고 놉니다. 웃자고 만든 장면인데, 이런 게 상식을 굳히는 데는 논문보다 셉니다.

이 오해가 안 사라지는 이유는 이해합니다. 명절날 소파에서 조는 나를 설명하기에 "많이 먹고 술 마셔서"보다 "tryptophan 때문에"가 훨씬 그럴듯하니까요.

그래도 식사 후 졸린 상태로 하는 장거리 운전은 조심해야 합니다. 칠면조 탓이든 아니든 졸린 건 졸린 거니까요.

저라면 접시를 한 번 덜 채우고, 식후에 소파로 직행하는 대신 동네를 한 바퀴 걷겠습니다. 운전할 사람은 술을 안 마시고요.

칠면조는 올해도 누명을 쓰겠지만, 칠면조 자체를 줄일 이유는 없습니다. 줄일 게 있다면 두 번째 파이 조각과 세 번째 와인 잔입니다. 여러분 댁 식탁에서는 올해 누가 범인이 될지, 한번 지켜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