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낯선 사람과 눈 마주치면 웃는 진짜 이유 - Brooklyn - 1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제일 당황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길에서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 사람이 씩 웃어주는 거였어요.

속으로 어, 나 아는 사람인가 하면서 당황했는데 아니었어요. 그냥 스쳐 지나가는 행인이었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트 계산 줄에서도, 산책하다가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니 이제는 오히려 제가 먼저 씩 웃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잖아요. 서로 이름도 모르고 다시 볼 일도 없는 사이인데 왜 굳이 웃어주는 걸까요.

이 궁금증, 사실 학자들도 진지하게 다뤘더라고요. 문화 비교 심리학 쪽에서 꽤 오래전부터 연구된 주제입니다.

2006년에 마리아 아라포바라는 연구자가 미국, 독일, 영국, 러시아 대학생 13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돌린 적이 있어요.

질문은 간단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하겠냐는 거였죠.

선택지는 세 가지였어요. 웃고 나서 시선을 돌린다, 그냥 시선을 돌린다, 눈을 계속 응시하다가 돌린다.

결과가 꽤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미국, 독일, 영국 응답자의 90퍼센트가 웃고 나서 시선을 돌린다를 골랐습니다.

반면 러시아 응답자 중에는 15퍼센트만 같은 선택을 했어요.

숫자 차이가 이 정도로 클 줄은 저도 몰랐네요.

이 개념을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1971년 책에서 이미 정리해뒀더라고요. 낯선 사람과 스칠 때 짧게 눈을 맞췄다가 곧 시선을 돌리는 행동을 civil inattention,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대놓고 빤히 쳐다보는 것도 둘 다 실례라서 그 중간을 택하는 거라고 해요. 미국에서는 여기에 짧은 미소까지 곁들이니, 예의 바른 무관심에 상냥함을 한 스푼 더 얹은 셈이죠.

이 간극이 왜 생기는지가 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러시아 문화권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웃는 게 특별한 호감의 표시로 읽힌다고 해요.

그러니까 아무한테나 웃어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반대로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이 웃음이 그냥 형식적인 예의, courtesy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오해하는 일도 생겨요. 미국 사람은 웃지 않는 러시아 사람을 보고 무뚝뚝하거나 화났다고 오해하고, 러시아 사람은 미국 사람의 미소를 가식적이라고 느낀다는 겁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에 대한 또 다른 설명도 있어요. 심리학자 토머스 탈헬름 연구팀은 이민자가 많고 여러 언어가 섞인 사회일수록 미소를 더 자주 쓴다고 봤습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들끼리 살다 보니 표정이라는 공통 언어를 더 쓰게 됐다는 논리인데,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이민 역사가 긴 나라일수록 낯선 사람에게 잘 웃어준다는 관찰과 맞아떨어져요.

여기서 핵심은 이거예요. 이 미소가 감정 표현이 아니라 일종의 신호, 그러니까 signal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를 아주 짧게 보내는 거예요. 말 한마디 없이도 그게 전달됩니다.

표정 연구자들은 미소를 두 종류로 나눠요. 눈가 근육까지 움직이는 진짜 미소는 뒤셴 미소라 부르고 입꼬리만 올라가는 미소와 구분하는데, 낯선 사람과 스칠 때 짓는 미소는 대개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걸 뒷받침하는 다른 연구도 있습니다. 코넬대의 로버트 크라우트와 로버트 존스턴이 1979년에 볼링장에서 진행한 실험인데요.

아이디어가 참 영리했습니다. 사람들이 스트라이크를 쳤을 때 핀을 보고 있는 순간과 몸을 돌려 일행을 마주보는 순간을 따로 관찰한 거예요.

핀을 향해 서 있을 때, 그러니까 혼자 기뻐하는 그 순간에는 겨우 4퍼센트만 웃었습니다. 그런데 몸을 돌려 친구나 가족을 마주보자마자 42퍼센트로 확 뛰었어요.

이 결과가 말해주는 건 분명합니다. 웃음은 기쁨을 그대로 얼굴에 옮기는 반사작용이 아니라 사람을 마주했을 때 켜지는 사회적 스위치에 가깝다는 거예요.

낯선 사람과 눈 마주쳤을 때 나오는 그 미소도 같은 원리라고 보면 됩니다. 상대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자동으로 켜지는 신호인 거죠.

돌이켜보면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오히려 시선을 얼른 피하는 쪽이 더 익숙했던 것 같아요. 무례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나름의 방식이었던 거죠.

개인적으로는 이 방식이 꽤 실용적이라고 봅니다. 서로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끼리 마주쳤을 때 누가 나서서 규칙을 정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결국 각자가 알아서 작은 신뢰의 신호를 주고받는 수밖에 없는데, 미소가 그 역할을 아주 값싸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셈이죠. 형식적이라고 폄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외도 있어요. 뉴욕 지하철처럼 붐비고 다들 지친 곳에서는 눈이 마주쳐도 굳이 웃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같은 미국 안에서도 도시나 상황에 따라 온도차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여유로운 동네 골목에서는 먼저 웃어주고, 혼잡한 전철 안에서는 굳이 애쓰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이걸 진짜 호감으로 착각하면 곤란해질 수 있어요. 미국에 처음 온 유학생들 중에 낯선 사람의 미소를 개인적인 관심으로 오해했다가 머쓱해지는 경우를 종종 봤거든요.

그러니까 다음에 미국에서 누가 눈 마주치고 씩 웃어준다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 사람도 나한테 안전 신호 보내는구나, 딱 그 정도로 받아들이고 가볍게 웃어주면 끝이에요.

사소해 보이는 미소 하나에 이런 사회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저는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다음에 낯선 사람과 눈 마주칠 일 있으면 한번 의식해서 관찰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