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는 왜 내가 아는 사람만 나올까, 이제는 알 것 같다 - Los Angeles - 1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어젯밤 꿈자리가 좋았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같은 말이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상한 꿈을 꾸면 하루 종일 찜찜해하고, 반대로 돼지꿈이나 돈이 들어오는 꿈을 꾸면 괜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시험을 앞두고 좋은 꿈을 꾸면 잘될 것 같았고, 사업상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상한 꿈을 꾸면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마흔이 넘고 나서 보니까 이제는 내가 꿈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요즘은 오히려 꿈이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거를 끌어올리는 장치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에는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만 나온다.

예전에 알던 친구, 한동안 연락이 끊긴 사람, 오래전에 짝사랑한 여자,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지인의 가족, 한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아주 구체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지금 사는 집과 옛날 집이 이상하게 섞여 나오기도 하고 미국 첫 직장이나 당시 힘들었던 생활이 한 장면 안에 같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걸 보면 꿈이라는 게 미래의 영상을 미리 보여준다기보다 머릿속 어딘가에 쌓여 있던 기억을 다시 꺼내 조합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특히 요즘처럼 현실이 팍팍할 때는 그런 생각이 더 든다.

LA 물가는 계속 오르고, 마켓 한번 가도 돈이 많이 나가고, 자동차 보험이며 전기료며 안 오른 게 없다.

사업을 하면 앞으로 벌 돈도 생각해야 하고, 노후 준비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게 많아지니까 이상하게 예전 사람들이 꿈에 자주 나온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한동안 멍해질 때가 있다.

'그 사람 지금 뭐 하고 살까.' '그때는 참 좋았는데.' 그러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옛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꿈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자기 연민이라고 본다.

자신을 불쌍하게 여긴다는 의미보다는, 지금의 내가 힘드니까 과거의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마음에 가깝다.

사실 과거라고 해서 마냥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때도 돈 걱정을 했고, 일이 안 풀려 답답했고, 인간관계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나쁜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좋은 장면은 선명하게 남는다.

꿈은 바로 그 기억을 건드린다.

그래서 꿈에서 오래전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가 미래의 어떤 일을 알려주려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을 필요로 해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었던 현실보다 조금 덜 복잡했던 시절, 지금보다 젊었던 나, 아직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다고 느꼈던 그때 말이다.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해서 나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좋은 꿈을 꾸었다고 해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이미 불안하니까 불안한 꿈을 꾸고, 내가 뭔가 기대하고 있으니까 좋은 꿈을 꾸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뒤 우리는 그 꿈에 의미를 붙인다.

어쩌면 꿈은 미래에서 오는 신호가 아니라 과거에서 오는 편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조금 지쳤을 때, 머릿속 깊은 곳에 있던 사람과 장소와 시간을 꺼내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나는 꿈에서 오래된 사람을 만나면 예전처럼 무슨 일이 생기려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요즘 좀 지쳤구나 생각한다.

꿈이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것.

나이가 들수록 나는 꿈을 그렇게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