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맥주 처음 좋아하게 된 게 언제냐면...
찌는듯한 여름날 대학 신입 동기들과 모임을 끝내고 치킨집에서 시원하게 들이킨 그 첫 잔이었지.
그때는 그냥 "와~ 톡 쏘네, 좋다" 이 정도였는데, 지금은 맥주 기원부터 휴스턴 브루어리까지 줄줄이 떠들어댈 정도로 빠져버렸어.
맥주라는 게 사실 엄청 오래된 술이야.
기원전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효된 보리 흔적이 나왔대.
그냥 빵 만들다가 보리가 물에 젖고 발효되면서 우연히 나온 게 맥주의 시작.
미국에서 제일 흔히 보이는 건 역시 라거 맥주야.
슈퍼 가면 버드와이저, 쿠어스, 밀러가 줄줄이 냉장고에 꽂혀있거든.
더운 날에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시기 딱 좋아. 한국에서 마시는 맥주도 라거맥주들이 대부분이지. 안주맛으로 마시기 좋거든.
근데 요즘은 에일, 특히 IPA가 대세야. 이게 호프 향이 확~ 올라오고 과일향도 나고, 뭔가 "이런 맛이지" 하는 매력이 있거든.
솔직히 라거는 누구나 쉽게 마시는 '국민 맥주'라면, IPA는 취향 확실한 사람들이 꽂히는 '덕후 맥주' 같은 거지.
맥주 얘기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발라스터 포인트야. 스컬핀 IPA라고 있는데, 이건 진짜 전설이지.
홉 향을 강렬하게 살리면서도 마시기 부담 없어서, 맥주 좀 마셔본 사람들은 다 한 번쯤 찾아 마셔.
이쯤 되면 맥주가 그냥 술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흑맥주라고 하면 흔히 '맛이 진하고 무겁다'는 인상이 먼저 떠오르지?
사실 흑맥주의 정식 이름은 스타우트나 포터 같은 스타일을 말하는데, 보리를 강하게 볶아서 만든 덕분에 특유의 짙은 색과 구수한 향이 난다.
커피나 다크초콜릿 같은 풍미가 느껴져서, 처음 마시는 사람들은 "이게 맥주 맞아?" 하고 놀라기도 해.
라거처럼 시원하게 들이키는 게 아니라,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 마시는 재미가 크지.
미국에서도 기네스 같은 스타우트는 꾸준히 사랑받고 있고, 요즘은 로컬 브루어리에서 바닐라, 카카오, 심지어 고추를 넣은 흑맥주까지 내놓고 있어.
휴스턴의 브루어리에서도 겨울 시즌이면 한정판 흑맥주를 종종 출시하는데, 쌀쌀한 날 저녁에 한 잔 들이키면 딱이지.
흑맥주는 단순히 색이 어두운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풍미와 깊이로 맥주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사는 휴스턴 맥주이야기를 해보자면 여긴 날씨가 반년은 찜통이라 맥주 없으면 못 살아.
그래서 그런지 브루어리 문화가 엄청 활발해.
예를 들어, 세인트 아놀드(St. Arnold)는 텍사스에서 제일 오래된 크래프트 브루어리인데, 진짜 휴스턴 사람들의 자부심이야.
'Fancy Lawnmower'라는 맥주가 있는데, 이름처럼 잔디 깎고 땀 뻘뻘 흘린 뒤에 한 모금 마시면 그냥 천국 간 기분이야.
또 카arbach Brewing도 유명한데, 여기서 나온 'Hopadillo IPA'는 휴스턴 바비큐 파티의 단골 손님이지. 매운 바비큐 소스랑 IPA의 씁쓸한 맛이 딱 맞아떨어져.
솔직히 말하면, 맥주는 내 미국 생활에 가장 자연스럽게 녹아든 친구 같은 존재야.
슈퍼볼 경기 볼 때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여름에 땀 뻘뻘 흘리다가 집에 와서 시원한 한 캔 따면 그게 바로 행복이지.
라거의 청량감, 에일의 개성, 컬트맥주의 실험정신, 그리고 휴스턴 브루어리의 열정까지...
누군가에겐 와인이 멋진 순간을 만들어주겠지만, 나한테는 맥주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거지.
맥주는 그냥 술이 아니라, 친구 만나 수다 떨고, 혼자면 혼자인대로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어주는 문화 그 자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