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화상 회의에 들어갔는데 상대방이 후드티를 입고 있어서 순간 움찔했다. 예의가 없는 건가 싶었는데 곱씹어보니 이제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차림이 자연스러운 태도로 읽히는 분위기다.
정장을 갖춰 입고 출근하는 사람보다 청바지에 운동화 신은 사람이 더 많아진 지 꽤 됐다.
예전에는 '금요일은 캐주얼 데이'라는 말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말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다. 평일 내내 캐주얼이니까.
궁금해서 캐주얼 프라이데이가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아봤다. 생각보다 오래된 이야기였다.
시작은 뜻밖에도 하와이였다. 1960년대 하와이 의류 조합이 자기 지역 셔츠를 더 팔려고 벌인 캠페인이 출발점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넥타이까지 매고 일해야 했던 사람들 불만이 컸다는 얘기도 함께 전해진다.
알로하 셔츠를 관공서와 회사에 나눠주면서 금요일만이라도 입고 출근하자는 운동을 벌인 거다. 이게 생각보다 잘 먹혔다. 1965년쯤에는 하와이 내 기업들이 연중 이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본토에서도 다른 흐름이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휴렛팩커드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실리콘밸리는 지금 같은 화려한 이미지가 아니라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들이 모인 동네였다.
엔지니어들의 창의력을 끌어내려고 1950년대부터 금요일엔 편한 옷차림을 허용했다고 하니, 캐주얼 프라이데이의 뿌리가 두 갈래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게 전국적으로 퍼진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리바이스의 카키 브랜드, 도커스 얘기다. 도커스 자체는 1986년에 나왔는데 처음엔 골프장에서나 입는 옷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사무실용 바지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한다.
1992년, 리바이스가 판을 뒤집었다. 인사 담당자 2만 5천 명에게 '캐주얼 비즈니스웨어 가이드'라는 팸플릿을 보낸 거다.
정장 대신 도커스 카키를 갖춰 입은 직장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정도면 회사에서도 괜찮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팸플릿 하나가 미국 사무실 옷차림의 표준을 사실상 새로 썼다.
시기도 절묘했다. 90년대 초 불황을 겪던 회사들 입장에선 캐주얼 프라이데이가 돈 안 드는 복지였다.
월급은 못 올려줘도 옷차림 규정 하나 풀어주면 직원들 기분은 확실히 나아지니까.
문제는 다들 뭘 입어야 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샌들까지 등장하면서 회사들이 오히려 당황했다는 기록도 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분위기는 좋아졌는데 회사 이미지가 흐트러질까 걱정스러웠던 셈이다.
그래서 도커스의 가이드가 더 힘을 받았다. 극단적인 캐주얼과 정장 사이, 적당한 선을 그어준 셈이니까.
이후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 인터넷 산업이 커지면서 이 흐름은 더 단단해졌다.
넥타이 맨 개발자보다 티셔츠 입은 개발자가 더 익숙한 그림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 무렵부터는 최고경영자들도 정장 대신 편한 차림으로 무대에 서는 게 낯설지 않아졌다. 능력을 보여주는 방식이 옷차림보다 결과물 쪽으로 완전히 옮겨간 셈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이 흐름이 아예 선을 넘었다. 북미 사무직 5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3퍼센트가 팬데믹 이전보다 옷차림이 더 편해졌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팬데믹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시점에 나온 결과라 더 눈에 띄었다.
응답자 다수가 요즘은 매일이 캐주얼 프라이데이 같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구체적으로 뭐가 늘었는지도 재밌다. 청바지가 늘었다는 응답이 43퍼센트, 티셔츠는 28퍼센트였다.
크록스나 슬리퍼 같은 신발이 늘었다는 응답도 20퍼센트나 됐고, 애슬레저 룩이 늘었다는 응답은 16퍼센트였다.
심지어 잠옷 입고 일한다는 응답도 7퍼센트 나왔다니, 재택근무가 남긴 흔적이 확실히 있다.
요즘 사회초년생 중에는 정장을 아예 한 벌도 안 가진 사람도 흔하다. 면접이든 첫 출근이든 캐주얼 차림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이 변화를 그냥 게을러진 거라고만 보기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능력과 성과로 평가받고 싶다는 사람들 입장에선, 옷차림이라는 형식적인 기준이 줄어드는 게 오히려 공정한 방향일 수 있으니까.
물론 반대 흐름도 있다. 사무실 복귀를 강제하면서 옷차림 규정을 다시 조이는 회사들도 늘고 있다.
물론 나는 정장 입은 사람이 주는 신뢰감도 여전히 좋아한다. 다만 그 신뢰가 옷이 아니라 일하는 태도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결국 캐주얼 프라이데이는 옷 얘기로 시작해서 일하는 방식에 대한 얘기로 끝나는 셈이다. 정장의 자리를 편안함이 대신 차지한 셈이랄까.
여러분 회사는 어떤가요. 아직도 금요일과 평일 옷차림이 다른 곳인가요, 아니면 이미 매일이 캐주얼인가요.

coastalvibemaker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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