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회사 다니는 지인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복지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건강보험이랑 401k 이야기로 끝나버린다. 사실 회사마다 훨씬 다양한 혜택을 챙겨주는데, 정작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분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뭘 해주겠나 싶어서 아예 찾아볼 생각을 안 하시는 분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아까운 게 EAP, 그러니까 Employee Assistance Program이다. 회사가 제공하는 무료 상담 서비스인데 상담사와 몇 회는 완전히 무료로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심리 상담뿐 아니라 법률 상담이나 재정 상담까지 포함된 경우도 많다. 이혼 서류 검토나 유언장 작성, 세금 문제 같은 걸 변호사한테 무료로 물어볼 수 있는 셈이다.
SHRM 자료를 보면 미국 기업의 80퍼센트 이상이 EAP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걸 쓰는 직원은 중위값 기준 5.5퍼센트밖에 안 된다.
열에 아홉은 회사가 이런 걸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 채 지나간다는 얘기다. 이 격차를 보고 나도 살짝 놀랐다.
두 번째로 아까운 건 학비 지원, 영어로는 tuition assistance라고 부르는 교육비 지원 혜택이다. 미국 세법 127조에 따라 회사는 직원 한 명당 연간 5,250달러까지 비과세로 교육비를 지원할 수 있다.
2025년 세법 개정으로 이 5,250달러 한도가 영구적으로 유지되게 됐고, 학자금 대출 상환에도 계속 쓸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한시적인 혜택이었는데 이제는 기간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제도가 된 거다.
대학원 학비나 자격증 시험 비용, 어학원 수강료까지 인정되는 회사도 있다. 문제는 이걸 제공하는 회사가 48퍼센트뿐이고, 그마저도 안내를 제대로 안 하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그다음은 HSA와 FSA 얘기를 좀 해야겠다. 둘 다 의료비를 비과세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계좌인데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FSA는 연말까지 다 안 쓰면 남은 돈이 사라지는 구조다. 이걸 모르고 매년 회사가 넣어준 돈을 그냥 날리는 분들이 은근히 많다.
실제로 EBRI가 320만 개 계좌를 조사한 결과 FSA 가입자의 절반가량이 매년 일부 금액을 그냥 날리고 있었다. 2023년 한 해 미국 전체 근로자가 날린 FSA 금액이 40억 달러가 넘는다니 이건 좀 충격적이다.
반면 HSA는 다르다. 안 쓴 돈이 이월되고, 이직을 해도 계좌가 그대로 따라온다.
그러니까 병원 갈 일이 별로 없는 해라도 HSA에 넣어둔 돈은 손해가 아니라 그냥 저축이 되는 셈이다. 회사가 HSA 옵션이 있는 보험을 제공한다면 한 번쯤 비교해볼 가치가 있다.
은퇴 연금인 401k도 빼놓을 수 없다. 회사가 매칭을 해주는데 그 매칭을 다 못 받는 직원이 네 명 중 한 명꼴이라고 한다.
매칭을 다 못 받은 직원이 매년 놓치는 돈이 평균 1,336달러라는 조사도 있다. 이걸 20년 동안 복리로 계산하면 4만 달러가 넘게 차이가 난다니, 이건 정말 회사가 그냥 주는 돈을 안 받는 셈이다.
특히 연봉이 낮을수록, 그리고 나이가 젊을수록 매칭을 놓치는 비율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었다. 급여명세서 볼 때 401k 항목을 한 번쯤 다시 들여다보시길 권하고 싶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백업 차일드케어 혜택도 확인해볼 만하다. 어린이집이 갑자기 문을 닫거나 베이비시터가 펑크를 냈을 때 며칠 정도 대체 돌봄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제도다.
다만 이 혜택을 제공하는 회사는 전체 근로자 기준 12퍼센트로 아직 많지는 않다. 그래도 있다면 정말 요긴한 혜택이니 인사팀 문서를 한 번 뒤져볼 만하다.
입양을 고려하는 가정을 위한 입양 지원 혜택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34퍼센트가 유급 입양 휴가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혜택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회사가 먼저 나서서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인사팀 포털 안쪽, 클릭 몇 번은 더 들어가야 나오는 메뉴에 조용히 앉아 있다. 입사할 때 받았던 두꺼운 서류 뭉치 어딘가에 이미 적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연말 오픈 인롤먼트 기간에 맞춰서 이런 혜택 목록을 한 번씩 쭉 훑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고 본다. 세금 안 내고 받을 수 있는 돈을 놓치는 것만큼 아까운 일도 없으니까.
회사 다니면서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기는 게 결국 나와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 점심시간에 인사팀 사이트에 한 번 들어가 보시길 추천드린다.

스노섬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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