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유죄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 Santa Monica - 1

230조 원.

숫자가 너무 커서 감이 잘 안 옵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팰리세이즈 산불로 발생한 재산 피해 규모입니다.

주택 7천채가 불에 탔고, LA 역사상 최악의 산불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범인을 찾아 감옥에 넣어 벌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열린 재판은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닙니다.

배심원들이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서 재판부가 '심리 무효(Mistrial)'를 선언했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포청천이라도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만큼 판단이 어려운 사건입니다.

여러분도 잠시 배심원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시죠.

검찰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피고인 조너선 린더크네히트는 지난해 1월 1일 등산로에서 사회와 부유층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일부러 불을 질렀습니다.

처음 난 불은 진화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검찰은 꺼진 줄 알았던 잔불이 무려 엿새 동안 남아 있었고, 강풍이 불면서 다시 살아나 결국 팰리세이즈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유죄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 Santa Monica - 2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피고인은 최대 징역 45년형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변호인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우선 피고인이 직접 불을 질렀다는 물리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CCTV도 없고, 명확한 영상도 없습니다.

오히려 피고인은 화재 직후 직접 911에 신고했습니다. 정말 방화범이라면 스스로 신고했겠느냐는 겁니다.

또  변호인 측은 엿새 뒤 발생한 대형 산불이 당시 남아 있던 불씨 때문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 사이 불꽃놀이 때문에 새롭게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배심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검찰 이야기를 들으면 충분히 의심은 갑니다.

하지만 미국 형사재판은 "그럴 것 같다"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배심원들이 갈렸습니다.

무죄 10명. 유죄 2명.

무려 열 명이 "검찰이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미국은 배심원 의견은 무조건 만장일치가 원칙입니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유죄도 무죄도 확정되지 않습니다. 결국 재판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검찰은 오는 10월 재심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말 불씨 하나가 엿새 동안 살아남아 초대형 산불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법정에서는 가능성만으로 부족합니다. 그 불씨가 바로 그 화재의 원인이라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합니다.

그 사이 누군가 담배를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불꽃놀이였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작은 화재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230조 원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모르겠습니다"로 끝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법원 입장에서는 확실한 증거 없이 사람 한 명에게 45년형을 선고할 수도 없습니다.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재판은 단순히 방화범 한 명의 재판이 아닙니다.

앞으로 미국 산불 사건에서 어디까지 형사 책임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재심에서 유죄가 나온다면 "잔불이 남아 있다가 다시 살아난 경우"에 대한 책임 범위가 크게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무죄가 확정된다면 검찰은 앞으로 비슷한 사건에서 훨씬 더 강력한 과학적 증거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제가 배심원석에 앉아 있었더라도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불씨가 엿새 동안 살아남아 230조 원 피해를 냈다'는 검찰의 주장.

과연 그 증거만으로 사람 한 명에게 최대 45년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확신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번 사건은 재심이 끝난 뒤에도 미국 법조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가장 어려운 산불 책임 공방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