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 1차 대선 이기고 호들갑 떨다가 폭망한 보우소나루 - Washington - 1

미국 워싱턴 DC에서 정치 돌아가는 걸 지켜보다 보면 참 별의별 인간을 다 보게 된다.

그런데 이번 브라질 대통령 선거는 정말 기가 막힌다.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아닌데 벌써 당선된 것처럼 행동하다가 결국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이 있다.

바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다. 전직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아들이자 브라질 우파의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지난 10월 4일 브라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플라비우는 47.03%를 얻었다. 현직 대통령 룰라는 45.16%였다. 약 223만 표 차이로 이겼다.

이 정도면 상당히 유리한 출발이었다.

더구나 브라질에서는 1989년 이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뒤진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역전한 사례가 없었다.

그러니 우파 진영이 신날 만도 했다.

문제는 신나는 것과 정신줄 놓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플라비우는 1차 투표에서 승리하자마자 마치 대통령 당선증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선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차기 정부 장관 인선부터 거론했다. 브라질 정치 전문가들도 이런 과도한 자신감이 유권자들에게 오만하게 비쳤다고 지적한다.

참 대단한 자신감이다. 아직 결승전도 안 치렀는데 우승 트로피를 어디에 전시할지 고민한 셈이다.

두 번째 문제는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플라비우는 선거운동 내내 아버지 보우소나루의 정치적 계승자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와 관련자들을 사면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물론 열성 우파 지지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가족행사가 아니다.

브라질 국민이 당장 걱정하는 것은 물가와 일자리, 치안, 생활비다.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이야기보다 국민의 지갑을 어떻게 두툼하게 만들겠다는 설명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세 번째는 상대방을 너무 얕봤다는 점이다.

룰라는 올해 80세다. 부패 논란도 있었고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도 상당하다.

그런데 이 노련한 정치인이 1차 투표에서 패배하자 오히려 정신을 차렸다.

거리 유세와 소셜미디어 활동을 강화하고, 1차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냈다.

1차 투표의 기권자는 약 3,340만 명이었다. 결선투표에서는 투표율이 78.92%에서 80.8%로 올라갔다.

결국 룰라는 51.79%, 플라비우는 48.21%를 얻었다.

1차 투표에서 223만 표 앞섰던 사람이 결선에서는 약 443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ㅎㅎㅎ 불과 3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브라질 대선 1차 대선 이기고 호들갑 떨다가 폭망한 보우소나루 - Washington - 2

물론 이 패배를 플라비우의 오만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룰라의 조직력과 복지정책에 대한 지지, 투표율 상승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선거 막판까지 자신이 이미 이긴 것처럼 행동했다면 정치적 판단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더 황당한 것은 패배 이후의 행동이다.

플라비우는 투표시간 연장을 문제 삼으며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무효화를 요구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진영도 폭우가 내린 지역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요청했었다.

자기에게 유리하면 괜찮고 불리하면 부정선거라는 식으로 비치기 딱 좋은 상황이다.

결국 소속 자유당은 공식적으로 선거 결과를 인정했다.

여기 워싱턴에 사는 한국인 입장에서 이번 선거를 보며 몇 가지 생각이 든다.

우선 정치적 열광과 실제 민심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한인사회에서도 유튜브나 정치 커뮤니티만 들여다보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목소리 큰 사람과 투표장에 나오는 사람은 다르다.

또 하나는 정치인의 능력을 진영 논리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우파 성향이다. 그렇다고 우파 후보가 무조건 유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큰소리로 좌파를 욕하느냐가 아니다.

세금, 물가, 사업 환경, 치안, 의료비, 이민정책을 실제로 어떻게 운영하느냐다.

특히 미국에서 사업하고 세금 내며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정치인의 실무 능력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도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자기 지지자들끼리 모여 승리를 확신하는 것은 쉽다. 어려운 것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플라비우는 1차 투표에서 이미 충분한 지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결선투표에서 필요한 추가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대통령처럼 행동했던 정치인.

그런데 막상 선거가 끝나니 대통령은커녕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정치판에서 김칫국부터 마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우파가 정말 정권을 잡고 싶다면 열광적인 지지자들의 박수보다 아직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선거는 자기편끼리 환호성을 크게 지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