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이벤트 저널리즘’으로 시작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 Madison - 1

대한민국 미인 대회의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그 이해의 출발점은 자연스럽게 1957년이라는 시점으로 수렴된다.

한국전쟁 휴전(1953년) 불과 4년 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 체제를 갓 정비하고 사회적 활력을 모색하던 엄혹한 시기였다. 당시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표면적 명분은 명확했다. 미국에서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석할 한국의 대표 미인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미 1954년 미스 유니버스 무대에 데뷔한 상태였으나 체계적인 국내 선발 절차가 부재했고, 195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식적인 국가대표 선발전을 구축하게 되었다. 당시 언론이 사용한 '미의 사절단'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 대회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가가 국제무대에 건재하고 세련된 얼굴을 내보인다는 일종의 국가주의적·외교적 함의가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신문사라는 언론 기관이 굳이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미인 대회를 떠맡은 진짜 배경은 당시 한국일보를 이끌던 백상(百想) 장기영 회장의 독특한 사업 스타일과 경영 철학에서 찾는 것이 정확하다. 언론계에서 '불도저'로 불릴 만큼 공격적인 미디어 경영자였던 그는 신춘문예,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미스코리아 대회를 잇달아 주관했고, 언론계 최초로 견습기자 공채를 시행하거나 경부역전마라톤을 개최하며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는 신문사가 직접 '국민적 이벤트'를 기획·소유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화제와 발행 부수, 그리고 광고 수익을 동시에 끌어오는 전형적인 '이벤트 저널리즘(Event Journalism)' 전략이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장기영 회장이 구축한 거대한 미디어 포트폴리오의 핵심 축 중 하나였다. 실제로 한국일보는 1면에 대대적인 사고(社告)를 내며 참가를 독려했고, 본선 무대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 행사장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신문사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국적인 주목도를 독점할 수 있는 고효율의 킬러 콘텐츠였던 셈이다.

요약하자면 초기 미스코리아 대회의 탄생 동기는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국제대회 대표 선발이라는 명분, 전후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시대적 분위기, 그리고 이벤트를 통해 신문사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경영자의 본능이다. 특히 세 번째 동기는 "왜 하필 신문사가 미인 대회를 주최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1957년 ‘이벤트 저널리즘’으로 시작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 Madison - 2

전후 사회의 문화적 돌파구와 국가주의적 결합

1957년의 미스코리아 대회는 단순히 우수한 외모의 여성을 선발하는 자리를 넘어, 전후 한국 사회가 서구식 근대화를 열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선언이기도 했다. 한복을 입은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서구식 수영복 프로필과 드레스를 심사 기준에 도입한 것은 당시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파괴된 인프라와 빈곤 속에서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잠시나마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만드는 화려한 축제였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국가의 이해관계는 긴밀하게 맞물렸다. 정부 입장에서는 미스코리아를 통해 "한국은 더 이상 전쟁의 참상에 머물러 있는 낙후된 나라가 아니며,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할 준비가 된 세련된 국가"라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초기 미스코리아 수상자들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닌, 국빈 방문이나 해외 박람회 등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는 공적 자산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비행기 트랩을 오르내리며 어깨에 띠를 두른 미스코리아들의 모습은 고도성장기 한국의 외교적 자부심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다.

이처럼 국가적 명분과 대중적 열광이 결합하면서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대회는 수십 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 매년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TV 중계방송의 시청률이 치솟았고, 누가 왕관을 차지할 것인가는 온 동네의 가장 큰 얘깃거리였다. 장기영 회장이 의도했던 '이벤트 저널리즘'의 성과가 신문사의 발행 부수 증대와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결과로 완벽하게 증명된 황금기였다.

시대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충돌과 쇠퇴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 사회가 민주화·다원화되고 여성주의적 인식이 확정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급격한 균열을 맞이하게 된다.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은 여성을 신체 치수 중심으로 계량화하고 상품화한다는 비판이었다. 언론사가 주도하여 '여성의 미'를 표준화하고 등급을 매기는 행위가 과연 현대 민주 사회와 언론의 공익적 기능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폐지 운동이 거세졌고, 지상파 방송사의 본선 중계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결국 2002년, 오랫동안 대회의 화려함을 안방에 전달하던 지상파 방송의 생중계가 전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대중적 노출도가 급감하자 대회의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었으며, '국민적 이벤트'에서 '특정 업계와 지원자들만의 폐쇄적 행사'로 전락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딜레마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주최사인 한국일보 자신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진보적 가치를 담아내야 하는 언론사의 편집 방향과,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는 미인 대회를 수익 모델로 유지해야 하는 경영적 현실 사이의 모순이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주최권 이관이 남긴 역설적 유산

여기서 흥미로운 역사적 역설이 발생한다. 1957년 신문사의 성장 엔진이자 최고의 마케팅 포트폴리오로 기획되었던 미스코리아 대회는 세월이 흘러 본진이 가장 먼저 떼어내고 싶어 하는 무거운 부담이자 부끄러운 유산으로 변모했다. 한국일보 내부 구성원들과 기자들 사이에서조차 "회사의 정체성 및 콘텐츠 지향점과 정반대되는 사업을 운영하는 모순을 끝내야 한다"며 대회의 폐지나 매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분출되었다.

언론사로서의 신뢰도와 사회적 비판 사이에서 갈등하던 한국일보는 결국 경영적 결단을 내리게 된다. 2018년, 한국일보는 미스코리아 대회의 주최권을 자회사인 글로벌 E&B로 완전히 이관했다. 이는 단순히 사업 부서를 독립시킨 것을 넘어, 한국일보라는 정론지의 이름에서 미인 대회 주최사라는 꼬리표를 공식적으로 지워내려는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창간주의 든든한 동력이자 신문사를 키워낸 핵심 성장 축이 70년 뒤에는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리스크 요인으로 판명되어 분리된 꼴이다.

결국 1957년 시작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궤적은 단순한 미인 대회의 흥망성쇠를 넘어선다. 그것은 대한민국 전후 복구기와 고도성장기 속에서 언론사가 권력을 쥐고 대중 문화를 통제했던 '이벤트 저널리즘'의 화려한 시작점이었으며, 동시에 시대의 윤리적 기준과 시민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과거의 경영 방식이 어떻게 용도 폐기되고 분리되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사회학적 지표다. 70년 전 전후 한국 사회에 '미의 사절단'이라는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했던 대회의 쓸쓸한 이면은, 오늘날 우리에게 언론의 역할과 시대 변화에 발맞춘 문화 콘텐츠의 생존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