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미인 대회의 역사를 논할 때 1957년 시작된 한국일보 주최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정통성의 상징이었다면, 1970년대 등장한 대기업 주도형 전속 모델 선발대회는 당대 대중문화를 흔든 이벤트이었다.
그 정점에 1972년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 주최로 막을 올린 '미스 롯데 선발대회'가 있었다.
동양방송(TBC) 등 지상파 방송사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던 본선 무대는 단순한 기업 홍보 행사를 넘어섰다. 대회 입상은 곧바로 롯데 전속 광고 모델 발탁과 스타덤을 보장하는 고속도로였기에, 사실상 미스코리아 못지않은 신인 여배우들의 핵심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서미경 그녀는 바로 이 화려한 축제의 문을 연 '제1회 미스 롯데' 대상 수상자다.
1972년에 개최된 첫 대회에서 영예의 왕관을 쓴 그녀는 빼어난 외모로 하이틴 스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미스 롯데의 영향력은 이후 원미경과 이미숙이라는 스타가 배출되었고, 이후 채시라, 이미연 등 1980년대 하이틴 스타들이 모두 이 대회를 거치며 연예계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은막의 신데렐라, 그녀의 행보는 대중의 예상과 전혀 다른 행선지를 향했다.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1년, 그녀는 유학을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일본으로 떠나며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훗날 밝혀진 그녀의 선택은 무려 37살이나 많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의 혼인이었다. 법적 혼인이 아닌 사실혼 관계였으나, 기업의 얼굴로 선발된 최고 스타가 해당 기업의 최고 권력자와 결합한 이 사건은 재계와 연예계 안팎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베일에 싸여 있던 이들의 관계는 1983년 딸 신유미(전 호텔롯데 고문) 씨를 출산하고, 1988년 유전자 검사를 거쳐 신 명예회장의 호적에 친자식으로 정식 입적되면서 '공공연한 비밀'에서 공식적인 사실로 굳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산 규모
대중의 뇌리에서 잊히는 듯했던 그녀와 딸 신유미 씨 모녀가 다시 전 국민적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은밀하게 가려져 있던 모녀의 자산 실체가 드러났으며, 현재 이들 모녀의 재산 총액은 최소 약 8,000억 원에서 최대 1조 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신 명예회장으로부터 이어진 편법 증여 및 상속, 그리고 계열사 지분과 알짜배기 부동산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모녀가 보유한 자산 중 가장 핵심적이고 파괴력이 큰 것은 주식 자산이다. 그녀와 딸 신유미 씨, 그리고 모녀의 개인 회사인 '경유물산'이 소유한 지분을 모두 합하면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율이 총 6.8%에 달한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과 일본 전체 롯데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지배구조의 정점이자 지주회사다.
재계와 금융권에서 평가하는 이 6.8%의 지분 가치는 현금 환산 시 최소 7,000억 원에서 8,000억 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놀라운 점은 이 지분율이 롯데그룹의 수장인 신동빈 회장(1.4%)이나 신동주 전 부회장(1.6%)의 개인 직간접 지분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신 명예회장이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두 모녀의 경제적 기반을 얼마나 견고하게 다져주려 했는지 방증하는 대목이다.

수천억 원대 국내 알짜 부동산 자산
모녀가 국내에 보유한 부동산 자산 역시 공시지가 기준으로만 수천억 원에 달하며, 실제 매동 자산 가치와 자산 유동화 과정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부지: 2007년 신 명예회장으로부터 직접 증여받은 토지로, 면적만 약 73만㎡(약 22만 평)에 달한다. 공시지가 기준으로도 약 1,800억 원 상당에 육박하는 거대한 자산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유기타워 및 동숭동 유니플렉스: 그녀의 명의로 소유했던 강남구 삼성동의 유기타워(이후 한국표준협회 등에 매각)와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에 위치한 대형 공연장 '유니플렉스' 등 빌딩 자산들이 포함된다.
기타 고급 주거용 부동산: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롯데캐슬 벨베데레, 방배동의 5층 빌라 등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부동산들을 소유해 왔다. 딸 신유미 씨 또한 이와 별개로 약 180억 원 상당의 개인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 일가는 과거 롯데그룹의 내부 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확보했다. 모녀가 소유했던 '유원실업'은 전국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독점 운영했고, '유기개발'은 롯데백화점 본점 등 주요 점포의 알짜 식당가를 독점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당 이득은 과거 검찰의 배임 혐의 수사 과정에서 약 770억 원 규모로 파악되기도 했다.
대기업의 전형적인 사익 편취라는 사회적 비난과 사법적 리스크가 커지자, 결국 롯데그룹은 해당 매점 사업권과 식당가 운영권을 모두 회수하거나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시대의 그늘이 남긴 질문
그녀를 세상에 화려하게 등판시켰던 미스 롯데 선발대회는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스 롯데나 미스 드봉처럼 대기업이 주도하던 전속 미인 대회들은 연예기획사(에이전시) 시스템의 급격한 발전, 길거리 캐스팅의 활성화, 그리고 방송사의 공채 탤런트 제도 정착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폐지되었다. 기업이 직접 대규모 대회를 열어 전속 모델을 수급할 실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회는 시대를 기록한 유물이 되었지만, 그 무대의 초대 주인공이었던 그녀의 삶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현재까지도 복잡하고 냉정하게 얽혀 있다. 37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넘어선 결합과 그 대가로 쥐어 진 조 단위의 자산을 두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날 선 비판과 쓸쓸한 소회가 동시에 교차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젊은 청춘을 막대한 부와 맞바꿨으니 물질적으로는 평생 아쉬움이 없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냉소가 주를 이루는 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리 막대한 부와 명예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룹의 거대한 경영권은 결국 장남과 차남에게 승계되는 재벌가의 철저한 생리 속에서, 수십 년간 언론을 피해 숨어 지내며 철저히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여인의 외로움과 단절감을 과연 돈으로 모두 메울 수 있었겠느냐"는 연민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결국 그녀의 삶과 행적은 단순한 연예계의 스캔들이나 재벌가의 가십거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대한민국 고도성장기 속에서 대기업이 누렸던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 그리고 법적 테두리 경계에서 이루어진 편법 증여의 실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화려한 미인 대회의 스포트라이트에서 거대 재벌의 가장 은밀한 축으로, 그리고 다시 천문학적인 자산가로 변모해 온 그녀의 궤적은 우리 사회에 '부의 가치'와 '개인의 행복'에 대한 묵직하고도 씁쓸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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