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앞에서만 유독 따뜻해지는 미국인들의 진짜 이유 - Columbia - 1

몇 년 전 텍사스에 큰 홍수가 났을 때 뉴스에서 본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자기 트럭에 낚싯배를 싣고 나선 동네 아저씨들이 처음 보는 이웃들을 물에서 끌어올리고, 지붕 위에 갇힌 사람들을 태워 나르던 모습이었죠.

그 사람들 중에 소방관도 없고 구조대원도 없었습니다. 그냥 보트를 가진 평범한 이웃들이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장면은 미국에서 큰 재난이 날 때마다 반복됩니다. 허리케인이든 산불이든 토네이도든, 뉴스 화면에는 늘 낯선 사람을 위해 자기 시간과 물건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람들이 등장하거든요. 몇 해 전 로스앤젤레스에 큰 산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을 잃은 이웃을 위해 자기 집 문을 열어주고, 대피소에 담요와 음식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연일 화제가 되었죠.

평소엔 옆집 사람 이름도 잘 모르고 지나치던 동네에서, 왜 유독 재난 앞에서만 이런 모습이 나오는 걸까요.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학자들도 오래전부터 같은 질문을 붙들고 연구해 왔더라고요.

사회학자들은 이걸 컨버전스 행동, 우리말로 하면 수렴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재난이 터지면 사람과 물자와 도움의 손길이 그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몰려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거의 모든 재난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사회 현상이라고 하네요.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에서 이 부분을 아주 흥미롭게 짚었습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9.11, 허리케인 카트리나까지 여러 재난을 들여다본 결과,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서로를 짓밟는 일은 오히려 드물고 자발적인 협력과 이타심이 훨씬 흔하게 나타난다는 거예요. 우리가 재난 영화에서 흔히 보는 아비규환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결과죠.

이유를 짚어보면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평소엔 정치 성향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고 서로 부딪힐 일도 많던 사람들이, 재난 앞에서는 같은 물난리를 겪고 같은 하늘 아래서 떨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되는 거죠. 그 순간만큼은 나와 저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감각이 생기는 겁니다. 학자들은 이걸 공동 운명체 의식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도 살면서 비슷한 걸 여러 번 느꼈습니다. 중서부 쪽은 봄가을로 토네이도 경보가 자주 뜨는데, 평소엔 이런저런 이유로 서먹하던 이웃이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리고 지하실은 괜찮은지, 아이들은 안전한지 물어봐 주더라고요. 정치 얘기만 나오면 얼굴 붉히던 사람도 그 순간엔 그런 거 하나도 안 따지고요.

한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예요. 큰일이 생기면 단톡방마다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쏟아지고, 누군가는 반찬을 싸 들고 찾아가고, 누군가는 필요한 물건을 챙겨 보내줍니다. 평소엔 데면데면하던 사이라도 그 순간엔 다 같은 한 가족처럼 움직이는 걸 보게 되죠. 아이 키우는 엄마들끼리도 큰일이 있을 때만큼은 어느 학교, 어느 동네 사는지 안 가리고 서로 손을 내밀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원래 이렇게 서로 돕고 살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다만 평소엔 바쁘고, 각자 사는 방식도 다르고, 서로 다른 것들에 신경 쓰느라 그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있을 뿐이겠죠. 재난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만 잠시 접어뒀던 그 마음을 다시 꺼내 쓰게 되는 셈이에요.

물론 재난이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각자의 생각으로 흩어집니다. 그게 서운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남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재난이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그때 느꼈던 따뜻한 마음 한 조각만이라도 계속 품고 살면 좋겠습니다. 꼭 큰일이 나야만 서로를 챙기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그 마음을 조금씩 나눠 쓸 수 있다면 우리 동네가 훨씬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쯤은 옆집 문 한번 두드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