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 자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몇 년째 열심히 일했는데 연봉이 그대로라, 큰맘 먹고 상사에게 정성껏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고 합니다. 회사 기여도, 맡은 프로젝트, 시장 시세까지 조목조목 정리한 긴 편지였는데, 돌아온 답은 짧은 한 줄이었다고 하더군요. "검토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후속 대화도, 다음 자리도 없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메일은 상사 입장에서 언제든 뒤로 미룰 수 있는 카드입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답장을 미루는 데 아무런 심리적 부담이 없습니다. 반면 얼굴을 마주하고 앉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반응을 보여야 하니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갑니다. 표정, 말투, 침묵의 길이 하나하나가 협상의 재료가 되는데 이메일에는 그런 게 전혀 담기지 않습니다.
미국 노동시장 자료를 보면 연봉 인상은 요청 자체가 결과를 크게 바꿉니다. 지난해 렌딩트리(LendingTree)가 미국 성인 20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연봉 인상을 요청한 정규직 근로자의 82퍼센트가 실제로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청 여부와 상관없이 인상을 받은 근로자 비율은 66퍼센트였으니, 직접 요청하는 쪽이 확실히 유리한 셈입니다. 가만히 있어서 얻는 것보다 말을 꺼내서 얻는 게 훨씬 많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궁금해지실 겁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방식은 이메일로는 미팅만 잡고, 실제 요청은 대면이나 화상 통화로 하는 겁니다. 이메일 문구는 간단하면 됩니다. "제 연봉 관련해서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실제 자리에서는 이렇게 시작하면 좋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맡은 프로젝트 성과와 시장 시세를 살펴봤는데, 이 부분에 대해 논의드리고 싶습니다." 이어서 구체적인 숫자와 성과를 근거로 제시하고, 목표 인상 폭을 명확히 말하는 게 핵심입니다.
협상이 바로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말고, 유급 휴가나 재택 일수 같은 다른 조건으로 방향을 돌려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난 뒤에는 짧은 이메일로 논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보내두는 게 좋습니다. 이건 상대를 압박하려는 게 아니라 서로 기억을 맞추고 기록을 남기는 차원입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낯선 곳에서 원하는 걸 얻으려면 결국 말을 걸고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직장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인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종종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들 참고 지내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는 게 결국 이런 작은 용기들이 쌓인 결과 아닐까 싶습니다. 말 한마디 꺼내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 한마디가 없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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