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부터 교회까지 흔들린다, 시카고 한인 인구 정체 - Chicago - 1

요즘 시카고 한인 사회를 보면 예전처럼 "계속 커지고 있다"는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인들이 시카고를 전부 떠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2020년 기준으로 일리노이에는 약 7만 명의 한인계 인구가 있었고, 약 6만2천 명이 시카고 광역권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성장의 속도입니다. 예전 시카고 한인 사회는 한국에서 새로운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면서 커졌습니다.

60년대 이후 이민이 본격화되면서 의사, 간호사, 유학생, 자영업자들이 들어왔고 가족초청까지 이어졌습니다.

1990년 무렵에는 시카고 광역권 한인 인구를 약 10만 명으로 추산하는 자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식의 신규 이민자 유입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요?

한인 사회는 사람 숫자가 어느 정도 유지돼야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한인 식당 하나만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이 새로 계속 들어와야 식당 손님도 생기고, 한국 마켓에서 장도 보고, 교회도 다니고, 아이들은 한글학교에도 갑니다.

그 사람들이 집을 사고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한인 경제가 돌아갑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줄고 기존 이민 1세대는 나이가 들어갑니다.

자녀들은 어떻게 될까요?

부모가 Albany Park에서 세탁소를 했다고 자녀가 그 세탁소를 물려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대학 졸업하고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금융회사 직원이 되어 시카고 다운타운으로 출근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주로 가버립니다.

이러면 사람 숫자가 비슷하게 유지된다고 해도 한인 경제의 밀도는 떨어집니다.

시카고의 옛날 Koreatown이 좋은 예입니다.

1980~90년대 Albany Park의 Lawrence Avenue에는 식당, 마켓, 여행사, 보험회사, 비디오 가게 같은 한인 업소가 줄줄이 있었습니다.

1991년에는 이 일대 한인 업소가 428개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인들이 교외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학교 때문에 Glenview, Niles, Northbrook, Skokie 같은 북부 교외로 올라간 겁니다.

1993년 시카고시가 Lawrence Avenue에 'Seoul Drive' 표지판을 설치했을 무렵에는 이미 시카고 지역 한인의 3분의 2 이상이 교외로 이동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카고 한인 사회를 보면 없어졌다기보다는 너무 넓게 퍼져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요즘 한인 인구도 시카고 시내뿐 아니라 Glenview, Northbrook, Buffalo Grove, Palatine, Wheeling, Vernon Hills 같은 지역으로 넓게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게 생활하기에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집도 넓고 학교도 괜찮고 조용하니까요. 그런데 한인 경제 입장에서는 문제가 됩니다.

한 동네에 한인이 3만 명 모여 살면 마켓도 여러 개 생기고 식당도 생기고 병원, 학원, 미용실, 은행, 부동산 회사까지 따라옵니다.

반대로 그 3만 명이 10개, 20개 교외도시에 흩어져 살면 같은 숫자라도 상권을 만드는 힘은 훨씬 약해집니다.

거기에 신규 이민까지 크게 늘지 않는다면 기존 한인 업소의 고객은 자연스럽게 늙어갑니다.

한국어 신문과 라디오 같은 한인 미디어가 어려워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Albany Park에 있던 한인 신문사들이 교외로 이동했고, 한때 지역 한인 라디오 방송국도 Des Plaines와 Wheeling으로 이전했다가 2023년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시카고 한인 인구가 크게 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통계 숫자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식당 손님이 줄고, 교회가 고령화되고, 한글학교 학생이 줄고, 한인 미디어가 어려워지고, 작은 한인 업소들이 다음 세대로 승계되지 않는 문제가 동시에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LA처럼 거대한 한인 경제권이 있거나 뉴욕처럼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들어오는 도시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시카고는 여전히 미국을 대표하는 큰 한인 사회입니다.

다만 이제 문제는 "한인이 몇 명 있느냐"보다 "다음 세대에도 한인 사회라는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느냐"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늘지 않는 커뮤니티는 어느 순간부터 성장하는 방법보다 줄어들지 않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 시카고 한인 사회가 걱정해야 할 부분도 바로 그 점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