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시내티에서 살면서 매달 부모님께 젤로 300달러씩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큰돈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1년으로 계산하면 작은 돈도 아닙니다. 한 달 300달러면 1년에 3,600달러니까요.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나처럼 부모님께 매달 용돈을 드릴까?
한국 사람들에게는 부모님 용돈이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취직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명절이나 생신 때 돈을 드리고, 형편이 되면 매달 일정 금액을 보내드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조금 다릅니다.
미국에도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경제적으로 돕는 경우가 당연히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은퇴한 뒤 생활비가 부족하거나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면 자녀들이 돈을 보태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부모님 용돈'이라는 개념으로 매달 200달러, 300달러를 정해놓고 보내는 문화는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경제생활을 일찍부터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 부모는 부모의 은퇴자금으로 생활하고 자녀는 자녀의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부모들도 자식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받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자녀들이 부모에게 돈을 안 쓰는 것은 아닙니다.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부모 자동차가 고장 나면 수리비를 대신 내준다든지, 휴대전화 요금을 가족 플랜에 넣어준다든지, 비행기표를 사준다든지 하는 식입니다. 병원비나 집수리 비용처럼 갑자기 큰돈이 필요한 경우 형제들이 나눠 부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봉투에 '용돈'을 넣어드리는 것보다 필요할 때 실제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경우가 더 눈에 띕니다.
부모 세대가 미국에서 충분한 은퇴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에는 자녀의 지원이 사실상 생활비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그러면 매달 300달러는 많은 돈일까요? 그 금액 자체보다 부모님 상황과 내 경제 상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활비와 주택비를 내고 은퇴자금도 꾸준히 저축하면서 부담 없이 300달러를 드리는 것이라면 충분히 현실적인 금액입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연금하고 들어오는 돈이 있지만 요즘 생활비가 많이 올라서 제가 보내는 300달러가 생각보다 쓸모가 있습니다.
전기료나 휴대전화 요금을 낼 수도 있고, 장을 몇 번 볼 수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외식하면서 돈 걱정을 조금 덜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에게는 액수보다 자식이 매달 잊지 않고 챙겨준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제 40대 중반이 넘어가니까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20대에는 부모님이 항상 부모님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늙어도 그분들은 그대로 계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모님 걸음이 느려지고 병원 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게 보입니다.
그때부터 매달 보내는 300달러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부양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돈이고, 용돈이라고 하기에는 매달 빠져나가는 돈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돈을 드릴 수 있는 기간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부모를 돕습니다.
다만 한국 사람처럼 매달 정해진 '용돈'을 드리기보다는 필요할 때 비용을 부담하거나 생활을 직접 도와주는 방식이 좀 더 흔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미국 사람들도 이렇게 하나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부모님이 기쁘게 받아주신다면 한 달 300달러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 돈을 조금 더 저축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게 아니라, 부모님이 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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