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은퇴한 지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첫 마디가 꽤 흥미로웠어요. 뭘 줄여야 하나 한참 고민했는데 제일 먼저 손이 간 게 다름 아닌 자동차였다고 하더라고요.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그 얘기를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계산부터 하고 있었어요.
다들 은퇴하면 외식부터 줄일 거라 짐작하는데,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순서가 생각보다 다릅니다.
미국 은퇴 연구기관인 EBRI가 은퇴자들의 소비 변화를 오랫동안 추적한 조사가 있는데, 은퇴 후 처음 2년 동안 가장 크게 줄어든 항목이 바로 교통비였습니다. 감소 폭이 무려 25.1퍼센트였다고 하니 다른 항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어요.
같은 조사에서 가계 전체 지출은 은퇴 첫 2년 동안 5.5퍼센트, 3~4년 차에는 12.5퍼센트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교통비가 줄어드는 속도가 가계 전체 지출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뜻이죠.
사실 은퇴 초반에는 오히려 씀씀이가 더 느는 집도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은퇴 첫 2년 동안 가구의 45.9퍼센트가 은퇴 전보다 지출이 늘었고, 이 비율은 6년 차가 되면 33.4퍼센트로 낮아졌습니다.
왜 하필 교통비일까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해요. 매일 출퇴근하던 차가 어느 날 갑자기 필요 없어지니까요.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가구의 교통비는 전체 지출의 약 17퍼센트를 차지하고, 연평균 금액으로는 8172달러에 달합니다. 일할 때는 당연하게 나가던 돈인데 막상 숫자로 보니 저도 조금 놀랐어요.
그래서 은퇴자들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게 바로 두 번째 차예요.
맞벌이일 때는 각자 차가 필요했지만, 둘 다 출근을 안 하게 되면 차 한 대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거든요. 한 대는 세워두고 나머지 한 대만 장 보러 가거나 병원 다녀올 때 쓰는 식이죠.
그런데 막상 정리하려니 아깝다는 생각부터 드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그럴 땐 최근 몇 달 치 주행거리를 한번 확인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 차 한 대를 유지하는 데 드는 돈을 따져보면 보험료만 연간 1200달러에서 2000달러 사이입니다.
거의 안 타는 차라도 기름값은 연간 800달러에서 1500달러 정도 나가고, 정비와 수리비까지 더하면 600달러에서 1200달러가 추가로 듭니다.
세 항목을 다 더해보면 차 한 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매년 수천 달러가 그대로 남는 셈이에요.
어쩌다 한 번 필요한 정도라면 그때그때 차량 공유 서비스를 부르는 편이 훨씬 저렴할 수도 있고요.
저라면 이 차이를 보고 나면 무조건 두 번째 차부터 정리할 것 같아요.
물론 교통비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줄이는 항목은 외식비예요.
AARP 조사에서는 50세에서 64세 응답자의 62퍼센트, 65세 이상 응답자의 55퍼센트가 외식을 줄였다고 답했습니다.
절반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외식 횟수를 줄였다는 뜻이니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죠.
그 배경에는 물가 부담이 크게 깔려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50세 이상 응답자의 94퍼센트가 최근 물가가 올랐다고 느꼈고, 그중 67퍼센트는 많이 올랐다고 답했어요.
물가가 이렇게 체감되니 외식 한 끼도 예전만큼 가볍게 결정하기 어려워진 거죠. 일주일에 서너 번 나가던 외식을 한두 번으로 줄이고, 대신 장을 봐서 집에서 차려 먹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번째로 사람들이 손을 보는 건 구독 서비스예요.
2025년 CNET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쓰지도 않는 구독 서비스에 연평균 205달러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몇 개, 잘 안 가는 운동 앱, 가끔 시키는 밀키트 정기배송까지 하나씩 뜯어보면 의외로 겹치는 게 많더라고요.
구독 하나하나는 한 달에 10에서 20달러 수준이라 크게 안 느껴지지만, 여러 개가 자동결제로 겹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은퇴 후에는 이런 자잘한 구독료 하나하나가 예전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고들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지출 감소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T. 로우 프라이스의 조사에서는 은퇴자의 지출이 이후에도 매년 평균 2퍼센트씩 꾸준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처음에 크게 줄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소득에 맞춰 계속 조금씩 조정해간다는 뜻이겠죠.
다만 뭐든 무조건 다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봐요. 좋아하는 카페 나들이 한 번 정도는 남겨두는 게 오히려 오래 절약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결국 은퇴 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화려한 사치품이 아니라 두 번째 차, 잦은 외식, 안 쓰는 구독료처럼 평소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었어요.
여러분이라면 뭐부터 정리하실 건가요.
저는 일단 차부터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숫자로 보면 가장 확실하게 티가 나는 항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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