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닉스에 살면서 느끼는 장점 중 하나가 겨울에도 별로 춥지 않다는 거예요. 물론 여름에는 밖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덥지만요.
저희 집에는 붉은귀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요.
영어로는 Red-Eared Slider라고 하는데 눈 뒤쪽에 빨간 줄무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에요.
사실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졸랐어요.
그런데 제가 직장을 다니다 보니 집을 낮에 비우는 편이라 강아지는 현실적으로 어렵겠더라고요.
요즘 강아지 호텔 비용도 장난이 아니잖아요. 피닉스에서 하루 맡기는 데 보통 40~75달러 정도 하고, 시설 좋은 곳은 100달러가 넘기도 해요.
아이들과 한국 다녀오면 돈 천불이 기본이고 미국여행만 다녀와도 그냥 몇백 달러가 훌쩍 나갑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강아지 키우는 친구는 여행 갈 때마다 호텔비 때문에 고민하더라고요.
그렇다고 강아지를 며칠씩 집에 혼자 둘 수도 없고 아는사람에게 부탁도 힘들고요.
고양이는 어떠냐고요? 솔직히 제가 고양이를 정이 안가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선택한 게 거북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심심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정말 좋아해요.
어항 앞에 앉아서 거북이가 헤엄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먹이 주는 시간에는 서로 자기가 주겠다고 난리예요.
더 재미있는 건 거북이가 사람을 알아보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거예요.
제가 어항 앞으로 다가가면 물속에서 앞발을 열심히 흔들면서 달려옵니다.
아이들이 가까이 가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사람을 반기는 건지 밥 달라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꽤 귀엽습니다.

거북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지출은 처음 어항을 마련할 때였어요.
붉은귀거북이는 성체가 되면 20~30cm까지 자라기 때문에 작은 어항에서는 키우기 어렵거든요.
큰 어항에 강력한 외부 여과기, 일광욕 공간, UVB 조명까지 제대로 마련하려면 중고로 장비를 구해도 300달러 정도는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크레이그리스트에서 횡재했습니다.
이사 때문에 어항을 처분한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원래 500달러 정도 들었다는 대형 어항과 필터 시스템을 전부 100달러에 내놓은 거예요.
바로 연락해서 가져왔죠.
깨끗하게 청소하고 물이 새는지 확인한 다음 여과기를 설치하고 필요한 조명도 추가했어요. 지금까지 아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필터 성능이 좋으니까 관리도 생각보다 편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일부 갈아주고, 필터도 주기적으로 청소합니다.
사료값도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하면 아주 부담이 적고요. 한달에 10불도 안들어가요.
다만 거북이라고 아무렇게나 키워도 되는 건 아니에요. 깨끗한 물과 충분한 공간, 적절한 수온, UVB 조명과 일광욕 장소는 꼭 필요합니다.
피닉스는 겨울이 온화하지만 실내에서 키우는 거북이에게 필요한 온도까지 항상 보장되는 건 아니에요.
여름에는 오히려 어항이 너무 뜨거워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고요.
그렇지만 매일 산책을 시킬 필요도 없고, 짖거나 털을 날리지도 않으니 저희 가족 생활에는 잘 맞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만족스러워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항부터 들여다보고 거북이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붉은귀거북이는 제대로 관리하면 20~30년 이상 살기도 한다고 해요.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독립한 뒤에도 이 녀석은 여전히 우리 집에서 헤엄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만큼 오랫동안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동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끔 거북이가 바위 위에 올라가 다리를 쭉 뻗고 쉬는 모습을 보면 100달러에 구입한 중고 어항이 우리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지는 못해도,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에요.
애완동물 고민하신다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밥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아주 귀엽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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