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3만6천여 명과 카투사 7천여 명, 추모의 벽 이름 - Washington - 1

다음 주 수요일이 Veterans Day라서 점심시간에 내셔널 몰 쪽으로 산책을 다녀왔어요. 링컨 기념관 바로 옆, 판초 입은 병사 동상들이 서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요.

예전엔 동상만 보고 사진 한 장 찍고 끝이었는데, 요즘은 꼭 한 바퀴를 더 돌게 됩니다. 동상 옆에 생긴 검은 화강암 벽, 추모의 벽 때문이에요.

이 벽은 2022년 7월 27일에 공식 헌정됐습니다. 정전협정 69주년이 되는 날이었고, 그날 행사에는 참전용사와 유족들이 많이 모였다고 해요.

벽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3만6,63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카투사 7,174명의 이름이 함께 있습니다.

둘을 합치면 4만3,808명이에요. 숫자로 읽을 땐 그냥 큰 숫자인데, 100개의 화강암 패널에 빼곡히 박힌 이름으로 보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솔직히 처음엔 좀 놀랐어요. 미국 땅 한복판 기념물에 한국 군인 이름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카투사는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의 줄임말이에요. 미군 부대에 배속돼서 같이 싸운 한국 군인들이죠.

군대 다녀온 한국 남자들 사이에선 카투사가 꿀보직 농담의 단골 소재잖아요. 그런데 이 벽 앞에 서면 그 농담이 쏙 들어갑니다. 7,174라는 숫자는 웃자고 할 숫자가 아니거든요.

전쟁 초기에 낯선 언어로 명령을 듣고 낯선 군복을 입고 싸웠던 사람들이에요. 그분들 이름이 미군 전사자와 같은 벽에 나란히 있다는 게 저는 꽤 의미 있다고 봐요.

이 벽이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니에요. 2016년 10월에 오바마 대통령이 추모의 벽 건립법에 서명했고, 공사는 2021년 3월에 시작됐습니다.

총 공사비는 2,200만 달러였어요. 그리고 그 대부분을 한국 정부, 국가보훈처가 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살짝 뭉클했어요. 도움받던 나라가 이제는 돕던 나라의 기념물을 같이 세우는 나라가 된 거니까요.

원래 기념공원은 1995년에 문을 열었어요. 그러니까 이름이 새겨지기까지 27년이 걸린 셈이에요. 그때부터 있던 문구가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 문구가 이번 벽과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 들어요. 공짜가 아니었던 그 값이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 이제는 이름으로 보이니까요.

동상은 모두 19개예요. 옆 화강암 벽에 비치면 38명이 되는데, 38선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이 유명합니다.

근데 여기서 끝나면 너무 훈훈한 얘기만 하는 거라, 불편한 얘기도 하나 해야겠어요.

헌정 다음 해인 2023년 1월, 뉴욕타임스가 벽의 이름 오류를 보도했어요. 철자가 틀린 이름이 1,015개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전쟁과 관계없는 사고나 사망으로 숨진 245명이 들어갔다는 지적도 나왔어요. 반대로 있어야 할 이름이 빠졌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이름 명단은 미 국방부가 기념재단에 넘겨준 거였어요. 결국 데이터 관리 문제였던 셈이죠. 70년 넘은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예요.

회사에서 엑셀 한 칸 틀리면 다음 날 수정본 보내면 그만인데, 이건 돌에 새긴 거잖아요. Ctrl+Z가 안 되는 데이터라는 게 제일 무서운 부분이에요.

그 뒤로 의회에서 초당적 조사가 시작됐고, 한국 보훈 당국도 오류를 바로잡겠다고 밝혔어요. 다만 실제로 패널이 얼마나 고쳐졌는지는 제가 확인한 공식 발표가 아직 없습니다.

저는 이런 건 정부가 끝까지 책임지고 고쳐야 한다고 봐요. 기념물은 예산 집행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유족에게 한 약속이니까요.

그래도 이 벽을 보러 가는 걸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자꾸 가서 봐야 이런 문제도 계속 관심을 받습니다. 관심이 식으면 수정도 같이 미뤄지는 게 세상 이치니까요.

팁을 드리자면, 낮보다 해 질 무렵이 좋아요. 화강암에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서 새겨진 이름이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

아이와 함께 간다면 이름 하나를 골라서 같이 읽어보세요. 교과서 속 6.25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 옵니다. 역사 공부로 이만한 현장 학습이 또 없어요.

가족이나 지인 중에 참전용사가 있다면 미리 이름을 찾아보고 가는 것도 방법이에요. 패널이 100개라 현장에서 무작정 찾다 보면 꽤 헤맵니다. 저도 처음 갔을 때 한참을 빙빙 돌았어요.

이번 Veterans Day에는 퍼레이드 대신 이 벽 앞에서 10분만 서 있어 보는 걸 추천해요. 거창한 행사보다 저는 그게 제일 확실한 감사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4만3,808개의 이름 중 단 하나라도 기억하고 돌아오면, 그날 산책은 충분히 남는 장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