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빙이라고 하면 공항 옆에 회사 많고 호텔 많고 출장 온 사람들이 많은 비즈니스 도시라는 이미지다.
그런데 영화와 드라마를 따라가 보면 어빙을 포함한 DFW 지역의 모습이 미국 대중문화 속에 생각보다 자주 등장했다.
내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Walker, Texas Ranger다.
Chuck Norris가 주연한 이 드라마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방영됐고 Dallas-Fort Worth 지역을 중심으로 촬영됐다.
어빙도 촬영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이 상당히 단순하다. 나쁜 놈 나타나고, Chuck Norris가 쫓아가고, 말로 해결이 안 되면 발차기가 나온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게 먹혔다. 텍사스 레인저라는 법 집행기관을 배경으로 넓은 땅과 카우보이 문화, 강한 남자,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이미지를 미국은 물론 해외 시청자들에게까지 보여줬다.
나도 예전에 이 드라마를 보면서 "텍사스는 정말 저렇게 생겼나?"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세월 지나 DFW에서 실제로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그때 TV에서 봤던 넓은 도로와 건조한 풍경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반대로 1999년 영화 Office Space는 텍사스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총 들고 범인을 잡는 텍사스가 아니라 회사에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영혼이 빠져나가는 직장인들의 텍사스다.
이 영화는 DFW 여러 지역에서 촬영됐고 Irving의 Decker Drive 일대도 촬영 장소로 사용됐다.

이게 묘하게 어빙과 잘 맞는다. Las Colinas에는 대형 오피스와 기업 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런 지역 근처에서 회사 생활의 무의미함을 신나게 조롱하는 영화를 찍었으니 장소 하나는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Office Space의 재미는 25년 넘게 지난 지금도 회사원의 모습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상사는 여전히 이상한 요구를 하고 회의는 여전히 길다. 컴퓨터는 좋아졌는데 사람 스트레스는 그대로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는 2017년 개봉한 A Ghost Story가 있다. Casey Affleck과 Rooney Mara가 출연한 독립영화로 North Texas 지역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에는 Walker 같은 액션도 없고 Office Space 같은 대놓고 웃기는 장면도 별로 없다.
대신 텍사스의 넓고 조용한 공간이 영화의 중요한 분위기를 만든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사람이 떠난 자리에 공간만 남는 느낌이다.
우리가 평소에는 그냥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텍사스 풍경이 영화 카메라 안에 들어가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DFW의 얼굴이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Walker에는 거칠고 자신감 넘치는 텍사스가 있고, Office Space에는 회사원들이 바글바글한 현대적인 기업도시가 있다. A Ghost Story에는 넓고 조용하고 조금은 쓸쓸한 텍사스가 있다.
어빙도 비슷하다. 공항 옆 회사 많은 도시라고만 생각하면 별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 조금 들여다보면 미국 사람들이 TV와 영화에서 봐왔던 여러 모습의 텍사스가 이 주변에 겹쳐 있다.
그리고 Office Space 촬영지 근처에서 월요일 아침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면 그 영화가 왜 아직도 웃긴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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