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0대가 데이팅앱 대신 런클럽에 가는 진짜 이유 - Burke - 1

토요일 아침 일찍 동네 트레일을 걷다 보면 요즘 낯선 풍경을 자주 봅니다. 같은 색 티셔츠를 입은 20대들이 수십 명씩 모여 몸을 풀고, 출발 전에 서로 이름부터 묻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마라톤 동호회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뛰고 나서 커피숍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걸 보니 운동만 하러 온 사람들은 아니구나 싶었어요.

미국 젊은 층 사이에서 런클럽이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됐다는 이야기는 이제 뉴스에도 자주 나옵니다. 데이팅앱 대신 런클럽에 간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정말 그런지 숫자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운동 기록 앱 스트라바가 2024년 말 낸 연례 보고서를 보면 러닝 클럽 참여가 한 해 동안 59퍼센트 늘었습니다. 기록 경쟁보다 함께 뛰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해석이 붙었고요.

같은 보고서에서 Z세대 다섯 명 중 한 명은 운동하다 만난 사람과 데이트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술집보다 운동하면서 사람을 만나라는 권유를 받는 경우가 네 배 많았다는 결과도 있었죠.

2025년 보고서에서는 흐름이 더 뚜렷해졌습니다. 스트라바 안의 클럽 수가 100만 개를 넘었고, 새로 생긴 러닝 클럽은 전년보다 3.5배 많았다고 합니다.

Z세대가 운동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비율은 X세대보다 39퍼센트 높았다고 해요. 숫자만 놓고 보면 젊은 층에게 운동이 사교 활동이 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반대편에는 데이팅앱 피로감이 있습니다. 포브스 헬스 설문에서는 데이팅앱 이용자의 78퍼센트가 번아웃을 느낀다고 답했고, Z세대는 그 비율이 79퍼센트였습니다.

이유도 구체적이었습니다. 의미 있는 연결이 안 된다, 실망이 반복된다, 거절당하는 게 지친다, 똑같은 대화가 되풀이된다는 답이 많았어요.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갑니다. 사진 몇 장과 짧은 소개 글로 사람을 고르고, 메시지를 주고받다 연락이 끊기는 일이 매일 반복되면 누구라도 지치겠죠.

런클럽은 그 과정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먼저 같은 길을 함께 뛰고, 숨이 차서 말이 끊겨도 어색하지 않고, 몇 주 지나면 자연스럽게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집니다.

상대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 크다고 봅니다. 목적이 운동이니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고, 땀 흘린 모습 그대로 만나니 꾸밀 여지도 별로 없거든요.

술 없이 어울리는 자리를 찾는 젊은 층이 늘었다는 분석도 함께 나옵니다. 바에서 비싼 술값을 내고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대화하는 것보다 아침 공기 속 5킬로미터가 훨씬 건강한 선택이긴 하죠.

다만 런클럽을 연애 시장으로만 보는 시선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같은 스트라바 조사에서 응답자의 58퍼센트는 운동을 통해 새 친구를 사귀었다고 답했고, Z세대는 66퍼센트였습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연애보다 관계 자체에 가깝습니다. 코로나 이후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세대가 매주 정해진 시간에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구조를 찾아낸 거라고 봐요.

이 동네에서도 그런 모임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페어팩스 쪽에는 페이서스 러닝이 거의 매일 무료 단체 런을 열고, 레스턴 러너스는 회원이 800명이 넘는 큰 클럽이에요.

브루어리에서 출발해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소셜 런 모임도 있습니다. 속도를 따지지 않고 걷는 사람도 받아주는 곳이 많아서 초보도 부담이 덜합니다.

연방 정부나 국방 관련 일로 이쪽에 온 한인 2세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직장 말고는 사람 만날 곳이 마땅치 않다고들 합니다. 교회 청년부가 아니면 선택지가 좁았던 게 사실이죠.

그런 친구들에게 런클럽은 꽤 괜찮은 문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영어가 편하든 아니든 같이 뛰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까요.

물론 런클럽이 데이팅앱을 완전히 대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트라바 수치는 자기 앱 이용자 조사이고, 데이팅앱을 쓰면서 런클럽도 나가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겁니다.

또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자리인 만큼 기본적인 조심은 필요합니다. 처음엔 사람 많은 공식 모임 위주로 나가고, 개인 연락처는 천천히 주고받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한동안 무릎이 안 좋아 운동을 쉬다가 다시 걷기부터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혼자 할 때는 사흘을 못 갔는데, 누군가와 약속을 잡으니 신기하게 계속 나가게 되더라고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데는 의지만큼 같이 가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런클럽이 젊은 층에게 주는 것도 결국 그런 힘이 아닐까 싶어요.

화면 속 프로필 대신 옆에서 같이 숨을 고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 거창한 문화 현상이라기보다 사람이 원래 사람을 만나던 방식으로 돌아가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10월 들어 아침 기온이 내려가면서 뛰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땀이 덜 나고 트레일 단풍도 슬슬 들기 시작하니 처음 나가 보기엔 지금이 딱이에요.

자녀가 요즘 사람 만날 데가 없다고 하소연한다면 데이팅앱보다 동네 런클럽 링크 하나 보내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연애가 안 되더라도 건강과 친구는 남으니까요.

저는 이번 주말에도 트레일에서 그 티셔츠 무리를 만날 것 같습니다. 이번엔 그냥 지나치지 말고 어디서 모이는지 한번 물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