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겸손이 미덕이 아닌 이유, 연구로 확인했어요 - Glenview - 1

연말 자기평가서 입력창을 열어놓고 삼십 분을 그냥 앉아 있었던 적이 있어요.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문장은 "팀원들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였습니다. 한국에서 배운 온도로는 그게 딱 맞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그렇게 쓰면 진짜로 팀 덕분에 굴러간 프로젝트로 읽힙니다. 매니저는 내가 쓴 문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요.

겸손이 미덕이 아니라는 말이 처음엔 냉소적으로 들렸는데, 지내보니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더라고요.

이런 장면은 사무실 밖에서도 반복돼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받아오는 과제부터가 자기 소개와 발표예요. 내가 무엇을 잘하고 왜 그게 중요한지 말로 설명하는 훈련을 아주 어릴 때부터 시키죠.

처음 보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도 대개 무슨 일을 하느냐로 시작하고, 거기서 자기 일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내놓지 못하면 대화가 그냥 흘러갑니다.

미국에서 자기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하는 문화는 뿌리가 꽤 깊습니다. 스스로 일어선 사람이라는 뜻의 self-made man이라는 표현이 기록에 처음 등장한 건 1832년 2월 2일 헨리 클레이가 상원에서 한 연설이었어요.

자수성가 서사가 200년 가까이 칭찬의 언어로 쓰여온 사회라는 뜻이죠. 그런 곳에서 자기 공을 남에게 돌리는 화법은 미덕이 아니라 그냥 정보 부족으로 처리됩니다.

더 재미있는 건 이걸 어설프게 흉내 내면 오히려 더 나빠진다는 점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오불 세제르, 프란체스카 지노, 마이클 노턴 연구팀이 아홉 개의 연구로 이른바 겸손한 척 자랑하기를 분석한 적이 있어요.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불평이나 겸손으로 포장한 자랑은 그냥 대놓고 자랑하는 쪽보다도 호감도와 유능함 평가가 낮았고, 이유는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어요.

면접 실험은 좀 뼈아팠습니다.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학생 122명 중 77퍼센트가 진짜 약점 대신 포장된 자랑을 골랐고, 그중 32.8퍼센트가 완벽주의를 꺼냈어요.

저도 저 질문 앞에서 완벽주의를 말한 적이 있는데, 평가자들은 차라리 솔직하게 답한 지원자를 선호했다고 하네요.

겸손한 자기 서술이 실제 기회를 깎는다는 증거는 더 직접적인 쪽에도 있습니다.

크리스틴 엑슬리와 저드 케슬러가 2022년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실은 연구는 같은 시험을 치른 참가자들에게 0에서 100 사이로 자기 성적을 평가하게 했어요.

남성 평균은 61점, 여성 평균은 45점이 나왔습니다. 실제 맞힌 문항 수는 오히려 여성 쪽이 조금 더 많았고요.

이 격차는 고용주에게 보여준다고 알려줬을 때뿐 아니라 아무런 유인이 없을 때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자기를 파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재는 눈금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죠.

문화 쪽 데이터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잭슨 루, 리처드 니스벳, 마이클 모리스가 2020년 PNAS에 발표한 연구는 아홉 개 연구에 걸쳐 1만 1030명을 분석했어요.

동아시아계는 남아시아계나 백인보다 미국에서 리더 직위에 오르는 비율이 낮았는데, 그 격차를 일관되게 설명한 변수는 편견도 야망도 아닌 의사 표현의 적극성이었습니다.

오히려 남아시아계 MBA 학생들이 차별 경험을 더 많이 보고했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췄어요.

능력의 문제도, 누가 우리를 미워하느냐의 문제도 아니고,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는 현지 문법과 어긋난 결과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겸손이 낮은 자존감의 증거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마커스와 기타야마가 1991년에 정리한 자기관 이론대로, 자신을 관계 속에서 규정하는 문화에서 겸손은 관계를 관리하는 합리적인 규범입니다. 미국에서 자기 얘기를 크게 하는 것 역시 그 사회의 규범이고요.

그렇다고 미국식 자기홍보가 늘 옳다는 말은 아닙니다.

과장이 기본값이 된 이력서와 링크드인 피드를 보고 있으면 피로한 것도 사실이고, 실제로 한 일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앞서가는 장면도 자주 봅니다.

다만 그 판을 혼자 거부한다고 판이 바뀌지는 않더군요. 바뀌는 건 내 평가서 점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제 결론은 성격을 바꾸는 게 아니라 문장을 바꾸는 쪽입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대신, 이 부분을 제가 맡아서 처리 시간을 며칠 줄였습니다라고 쓰는 것. 자랑이 아니라 그냥 사실 보고예요.

대신 겸손한 척 자랑하기로 돌아가지 않는 게 핵심입니다. 포장을 벗기고 숫자와 동사만 남기면 됩니다.

저는 여전히 자기평가서 앞에서 손이 느려요. 그래도 감정을 빼고 내가 한 일을 목록으로 적는 데까지는 왔습니다.

미덕을 버리자는 얘기가 아니라, 미덕이 통역되지 않는 방에서는 통역기를 챙기자는 쪽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