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집 초대받으면 뭘 들고 가나, 포틀럭 문화 속사정 - Glenview - 1

이민 초기에 이웃집 저녁 초대를 받고 한참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과일 한 상자를 사 들고 갔더니, 집주인이 고맙다면서도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더군요.

알고 보니 그날은 포틀럭이었습니다. 다들 음식 한 접시씩 들고 오는 자리에 저만 과일 상자를 안고 서 있었던 셈이지요. 그 과일은 결국 디저트 테이블 한쪽에 깎지도 못한 채 놓여 있었습니다.

그 뒤로 미국 사람들이 초대할 때 쓰는 말을 유심히 듣게 됐습니다. 같은 저녁 초대라도 디너 파티인지 포틀럭인지에 따라 들고 갈 물건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먼저 포틀럭이라는 말부터 보면 재미있습니다. 영어 기록상 가장 이른 용례는 1592년 영국 작가 토머스 내시의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의 뜻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 따로 준비 없이 냄비에 있는 음식을 그대로 내놓는 식사, 말 그대로 냄비 속 운에 맡기는 밥이었습니다.

북미 원주민의 나눔 잔치인 포틀래치에서 왔다는 설명도 자주 들립니다. 하지만 1590년대 영국 기록이 먼저 있으니, 저는 냄비와 운을 합친 말로 보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각자 한 접시씩 들고 모이는 방식은 1930년대 대공황 무렵 널리 퍼졌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한 집이 다 차리기 버거우니 나눠서 부담하자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지요.

특히 중서부에서는 교회 친교 모임과 포틀럭이 거의 한 몸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릅니다.

동부에서는 커버드 디시 서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인디애나 쪽에서는 피치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미네소타 사람들은 핫디시라는 캐서롤 요리 이름으로 이런 모임을 떠올린다고 하더군요.

결국 포틀럭의 속사정은 실속입니다. 집주인 혼자 수십 인분을 차리는 대신 부담을 쪼개고, 대신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구조입니다. 손님 입장에서도 부담이 한 접시로 정해지니 마음이 편하고, 처음 보는 이웃과 음식 얘기로 말문을 트기도 쉽습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무엇을 들고 갈지 답이 나옵니다. 포틀럭에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 한 접시가 정답입니다.

그런데 디너 파티는 다릅니다. 집주인이 메뉴를 다 짜놓은 자리에 음식을 들고 가면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에티켓 분야에서 오래 권위를 인정받는 에밀리 포스트 연구소는 디너 파티 손님이 보통 작은 선물을 가져간다고 설명합니다. 자주 함께 밥 먹는 가까운 사이라면 예외로 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연구소 공동대표인 리지 포스트가 호스트 선물이 의무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는 점입니다. 빈손으로 가도 결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와인에 대한 설명도 기억해둘 만합니다. 디너 파티에 들고 간 와인은 메뉴가 아니라 선물이니, 집주인이 그날 따지 않아도 서운해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꽃을 가져간다면 화병에 꽂아서 가는 것을 권합니다. 손님 맞느라 바쁜 집주인이 꽃병 찾고 물 받는 수고를 덜어주자는 배려지요.

제가 여러 번 겪어보니 포틀럭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더 있습니다. 첫째, 무엇을 가져갈지 미리 물어보는 것입니다.

주최 측이 샐러드, 메인, 디저트를 나눠 정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 물어보고 갔다가 디저트만 다섯 접시가 모이는 광경을 실제로 봤습니다.

둘째, 바로 내놓을 수 있는 상태로 가져갑니다. 남의 집 오븐과 레인지를 빌려 데우겠다고 하면 주방이 금세 꽉 막힙니다.

셋째, 덜어 먹을 서빙 스푼을 같이 챙깁니다. 의외로 이걸 빼먹는 사람이 많아서 집주인이 주방 서랍을 뒤지게 됩니다.

넷째, 그릇에 이름을 붙여둡니다. 모임이 끝나고 비슷한 유리 용기가 열 개쯤 쌓이면 누구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요즘은 알레르기나 채식을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서, 견과류나 고기가 들어갔는지 작은 메모를 붙이는 집도 늘었습니다. 사소해 보여도 이런 배려가 꽤 좋은 인상을 남깁니다.

한인 입장에서 고민되는 게 한식을 가져가도 되느냐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잡채나 김밥처럼 맵지 않고 식어도 맛있는 음식이 반응이 제일 좋았습니다.

반대로 냄새가 강한 찌개류나 손이 많이 가는 쌈 요리는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낯선 음식일수록 집어 먹기 쉬워야 손이 갑니다.

곧 추수감사절 시즌이라 초대받을 일이 늘어날 겁니다. 이때는 초대 문자에 bring a dish라는 말이 있는지부터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그 말이 있으면 포틀럭이고, 없으면 집주인이 다 차리는 자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애매하면 그냥 뭘 가져가면 좋을지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합니다.

에밀리 포스트 연구소는 모임이 끝난 뒤 감사 인사를 전하라고도 권합니다. 손편지가 부담스럽다면 다음 날 짧은 문자 한 통이라도 보내는 게 좋습니다.

돌아보면 그날 과일 상자가 틀린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포틀럭이라는 판의 규칙을 몰랐을 뿐이지요.

저라면 디너 파티에는 와인이나 화병에 꽂은 꽃, 포틀럭에는 잡채 한 접시와 서빙 스푼을 챙기겠습니다. 미국 초대 문화는 결국 집주인 일을 덜어주는 쪽이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