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가끔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요.
냉장고에는 먹을 것도 이것저것 많이있는데 이상하게 입맛이 없는 거죠.
그럴 때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이 바로 매콤한 오징어덮밥이에요.
대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 조그만 분식집이 하나 있었거든요.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가서 오징어덮밥을 시켜 먹곤 했어요.
커다란 접시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빨갛게 볶은 오징어를 듬뿍 올려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요.
친구들이랑 수다 떨면서 한 숟가락씩 비벼 먹던 그 맛이 아직도 생각나요.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네요 ㅠㅠ. 야속한 세월.....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오징어를 쉽게 구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도 애틀랜타 한국 마트에 가면 냉동 오징어가 반갑게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가격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소 불고기나 갈비 사 먹는 것에 비하면 아직은 저렴한 편이고요.
이번에는 손질된 오징어를 구입해서 깨끗하게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줬어요. 오징어는 익으면 크기가 줄어드니까 너무 작게 자르지 않는 게 좋아요.

양파 하나와 대파도 썰어 준비했어요. 저는 오징어덮밥에 양파가 넉넉히 들어가는 게 좋더라고요.
볶으면서 나오는 달큰한 맛이 매운 양념이랑 참 잘 어울리거든요.
웍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와 대파를 먼저 넣었어요. 여기에 오징어를 넣고 센 불에서 볶다가 설탕 한 숟가락을 듬뿍 넣어줍니다.
이게 제가 좋아하는 작은 요령이에요. 오징어에 설탕을 먼저 입혀주면 나중에 양념이 더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만 오래 볶으면 오징어가 질겨지니까 30초 정도만 빠르게 볶아줍니다.
이제 불을 조금 줄이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어요.
여기에 맛술과 간장, 고추장, 올리고당까지 넣으면 양념 준비는 끝이에요.
다시 센 불로 올려 2~3분 정도 빠르게 볶아주면 주방에 매콤달콤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해요.
이 냄새가 정말 사람을 못 참게 만들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입맛이 없다던 사람이 어느새 밥솥부터 열어보게 된다니까요.

마지막에 간을 보고 조금 싱거우면 간장을, 덜 달면 설탕을 약간 추가하면 돼요.
저는 너무 달지 않고 고춧가루의 칼칼한 맛이 살아 있는 쪽을 좋아해요.
따뜻한 밥을 넓은 그릇에 담고 오징어볶음을 넉넉하게 올렸어요.
통깨까지 톡톡 뿌리니 제법 그럴듯한 오징어덮밥이 완성됐네요.
숟가락으로 밥이랑 오징어를 쓱쓱 비벼서 한입 먹는데...
대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며 먹던 바로 그 맛이요.
그때는 몇천 원짜리 점심 한 끼가 그렇게 행복한 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비싼 음식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요.
아마 오징어덮밥이 맛있었던 것도 있지만, 함께 먹던 친구들과 그 시절의 분위기가 더해져서 그런가 봐요.
애틀랜타에서 산 지도 꽤 됐지만 가끔 예전에 좋아했던 음식 한 그릇이 만들어 먹으면 식구들도 좋아하거든요.
오늘도 오징어덮밥 한 그릇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역시 한국 사람 입맛에는 매콤한 밥 한 그릇이 최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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