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역사의 달에 한인이 꼭 알아야 할 흑인-한인 관계사 - Las Vegas - 1

동네 마트에 갔다가 2월도 아닌데 흑인 역사의 달 전시가 아직 남아 있는 걸 보고 문득 궁금해졌다. 한인들 사이에서 흑인 역사의 달이라고 하면 왠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우리 이민 역사에서 흑인 커뮤니티만큼 깊게 얽힌 인연도 드물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아시아계 이민 문이 열린 건 흑인 민권운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던 배경에 흑인 사회의 오랜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두 커뮤니티가 실제로 만난 자리는 화해가 아니라 갈등이었다. 1991년 3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다섯 살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가 한인 마켓 주인 두순자 씨의 총에 맞아 숨졌다. 오렌지 주스를 훔쳤다는 오해에서 시작된 실랑이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 법원은 두 씨에게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벌금형만 내렸고, 이 판결은 흑인 사회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이듬해 4월,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로스앤젤레스는 폭동에 휩싸였다. 그 불길 속에서 한인 상점 2300여 곳이 약탈되거나 불탔고 피해액은 4억 달러에 달했다. 코리아타운은 시 정치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경찰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한인들이 왜 하필 흑인 밀집 지역에서 장사를 했는지도 알아야 그림이 맞춰진다. 영어가 서툰 이민 1세대가 큰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업종이 흑인 동네의 작은 마켓과 세탁소였고, 은행 대출조차 어려운 처지는 두 커뮤니티가 비슷하게 겪은 소외였다. 그러니 이 갈등은 한인과 흑인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두 소수자를 같은 낙후된 동네에 몰아넣고 방치한 구조의 문제에 가까웠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당시 언론이 흑인과 한인의 갈등을 실제보다 부풀려 보도했다고 지적한다. 진짜 문제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소통 부족, 그리고 그 갈등을 방치한 도시 행정이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건 폭동 이후의 움직임이다. 진압 며칠 뒤 코리아타운에서는 흑인, 한인, 라틴계, 백인 3만 명이 함께 모여 평화 행진을 벌였다. 이후 흑인-한인 연합 같은 단체들이 생겨나 두 커뮤니티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어갔고, 그 흐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역사를 돌아보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이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정부가 인종 갈등을 법이나 정책으로 해결해줄 거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실제로 관계를 바꾼 건 정치인의 성명이 아니라 상점 주인과 손님이 서로 이름을 부르고, 자녀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사업체끼리 거래를 트는 아주 사소한 일상이었다.

지금도 한인 마켓에 가면 계산대 앞에서 흑인 이웃과 스몰토크를 나누는 사장님들을 본다. 이런 작은 접점 하나하나가 삼십여 년 전의 앙금을 조금씩 씻어내고 있는 셈이다. 거창한 구호보다 서로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서로의 아이 이름을 기억하고, 명절에 인사 한마디 건네는 쪽이 훨씬 힘이 세다고 믿는다.

그러니 흑인 역사의 달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이번 달만큼은 흑인 이웃이 운영하는 식당에 한 번 들러보거나 동네 흑인 커뮤니티 행사에 얼굴을 비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녀가 있다면 라타샤 할린스와 두순자 씨 이야기를 한 번쯤 같이 찾아보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남 탓이나 죄책감 대신 서로의 역사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죄책감을 느끼자는 게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민자와 소수자로 이 나라에 뿌리내린 두 커뮤니티가 어떻게 오해를 넘어 이웃이 됐는지 알아두는 게, 지금 우리가 이웃과 잘 지내는 데 실질적으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아는 것과 그 역사에 갇혀 사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