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차 매물을 보다 보면 사진은 멀쩡하고 가격은 착한데 왠지 마음에 걸리는 차가 꼭 있습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시승이 아니라 VIN 조회입니다.
VIN은 차마다 하나씩 붙는 17자리 고유번호입니다. 운전석 쪽 대시보드 아래 유리창 너머나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문틀 스티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셀러가 보내준 번호만 믿지 않고, 차 앞에서 직접 사진을 찍어 둡니다. 대시보드와 문틀, 타이틀 서류의 번호가 서로 다르면 그 자리에서 거래를 멈추는 게 맞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NICB의 VINCheck입니다. 보험사기 방지 단체인 NICB가 무료로 운영하는 서비스이고, 도난 신고 후 회수되지 않은 차인지, 보험사가 salvage로 처리한 적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NICB는 참여 보험사가 시장의 92%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참여하지 않은 보험사 기록이나 경찰 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조회는 IP 하나당 24시간에 다섯 번까지만 됩니다. 여러 대를 비교 중이라면 후보를 먼저 추려 두는 편이 낫습니다.
NICB 스스로도 이 결과가 종합 이력 리포트가 아니니 이것만 믿고 사지 말라고 안내합니다. 깨끗하게 나왔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NMVTIS, 즉 vehiclehistory.gov입니다. 보험사, salvage 경매장, 폐차장, 렌터카 회사가 전손 처리된 차를 30일 안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소비자는 정부가 승인한 민간 업체를 통해 리포트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Auto Data Direct는 타이틀 체크 한 건을 구독 없이 9.98달러에 팔고 있으니, 업체별 가격을 비교해 보세요.
흥미로운 건 Carfax나 AutoCheck 같은 유명 리포트가 NMVTIS 데이터를 그대로 담고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업용 리포트 하나와 NMVTIS 리포트 하나를 같이 보는 걸 권합니다.
Carfax 쪽은 정비 기록, 사고 신고, 소유자 수 같은 생활 이력에 강합니다. NMVTIS는 타이틀 브랜드와 전손 여부에 강합니다. 서로 빈 곳을 메워 주는 구조입니다.
세 번째는 NHTSA의 리콜 조회입니다. nhtsa.gov/recalls에 VIN을 넣으면 지난 15년 안의 안전 리콜 가운데 아직 수리하지 않은 항목이 나옵니다.
리콜 수리는 공식 딜러에서 무료로 해줍니다. 이미 수리가 끝난 리콜은 표시되지 않으니, 결과가 0건이면 지금 고칠 게 없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제 침수차 이야기를 해보죠. 허리케인이나 큰 홍수가 지나간 뒤에는 물에 잠겼던 차가 시간이 좀 지나 다른 주로 넘어와 매물로 나오는 일이 반복됩니다.
문제는 title washing입니다. 타이틀 규정이 느슨한 주로 차를 옮겨 다시 등록하면서 flood나 salvage 표시를 지워버리는 수법입니다.
그래서 서류를 볼 때는 타이틀에 flood, salvage, junk, rebuilt, reconstructed 같은 단어가 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최근에 다른 주에서 넘어온 차라면 이력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이유가 됩니다.
리포트 반영이 늦을 수도 있습니다. 주 검찰청 안내를 보면 침수 이력이 일반 소비자용 리포트에 올라오기까지 30일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지막 판단은 결국 눈과 코로 합니다. 문을 열었을 때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지, 반대로 오래된 차인데 방향제나 세정제 냄새가 유난히 진한지 보세요.
글러브박스 안쪽과 시트 밑, 트렁크 스페어타이어 자리에 진흙이나 고운 모래가 끼어 있는지 손전등으로 비춰 봅니다. 시트 레일이나 페달 아래 볼트에 녹이 슬어 있다면 꽤 강한 신호입니다.
헤드라이트, 테일라이트, 계기판 안에 습기나 물방울이 맺혀 있는지도 확인합니다. 엔진룸에서는 라디에이터나 엔진 블록에 물 자국 선이 남아 있는지 봅니다.
사고 이력은 패널 사이 틈 간격과 페인트 색 차이로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햇빛 아래에서 차 옆면을 비스듬히 보면 다시 칠한 부분이 의외로 잘 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구매 전 정비소 점검, 이른바 PPI를 꼭 받습니다. 따로 비용이 들지만, 침수차 한 대 잘못 사서 날리는 돈에 비하면 보험료 같은 비용입니다.
점검을 셀러가 지정한 곳이 아니라 내가 고른 정비소에서 받는 게 핵심입니다. 이걸 거절하는 셀러라면 그 자체로 답이 나온 셈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딜러에게 산다면 바뀐 규정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올해 10월 1일부터 시행된 CARS Act에 따라 5만 달러 이하 중고차는 사흘 안에 이유 없이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대신 주행거리 400마일을 넘기면 안 되고, 딜러는 차값의 1.5%, 최소 200달러에서 최대 600달러의 restocking fee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개인 간 거래에는 이런 장치가 없으니 사전 조회가 더 중요합니다.
정리하면 순서는 간단합니다. VIN을 직접 확인하고, NICB VINCheck를 돌리고, NMVTIS 리포트와 상업 리포트를 같이 보고, NHTSA 리콜을 조회하고, 마지막으로 내 정비사에게 맡깁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보가 셀러 쪽에만 쏠려 있는 시장에서 구매자가 쓸 수 있는 무기는 이런 공개 데이터뿐이고, 그중 NICB와 NHTSA 조회는 무료라는 건 꽤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라면 가격이 시세보다 눈에 띄게 싼 차일수록 조회를 한 단계 더 합니다. 싸게 나온 데는 대개 이유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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