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지 배경 메가히트 드라마, Northern Exposure - Anchorage - 1

알래스카 하면 대개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설원, 신비로운 오로라, 거대한 곰과 순록 무리처럼 대자연의 풍경이 생각나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이런 고정된 이미지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이게 다 미디어가 대중의 머릿속에 심어놓은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대중문화 역사에서 알래스카의 정겨운 소도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작품은 단연 드라마 <노던 익스포져(Northern Exposure)>입니다. 1990년대 초중반 미국 CBS에서 방영되며 메가 히트를 기록한 이 작품은, 뉴욕 출신의 엘리트 의사가 알래스카의 가상 소도시 '시시크'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드라마는 차갑고 척박한 얼음 땅이라는 편견을 깨고, 그곳에 사는 엉뚱하면서도 따뜻하고 개성 강한 로컬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일상을 아주 사랑스럽게 묘사했어요.

이 드라마 덕분에 전 세계 수많은 시청자가 알래스카에 눈을 뜨게 되었고, 막연한 공포 대신 친근함과 동경을 품게 되었죠.


저 역시 이 감성적인 드라마를 보며 알래스카를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낭만의 도시'로 기억하게 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반면, 스크린 속 영화들은 대개 알래스카를 완전히 다른 극단의 무대로 사용해왔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들은 인간이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작아질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혹독한 시험대로 알래스카를 그려왔죠.

리암 니슨 주연의 <더 그레이>처럼 늑대 무리와 생존 투쟁을 벌이거나, 문명을 거부한 청년의 실화를 다룬 최전방 오지 다큐멘터리들은 알래스카를 '문명이 닿지 않는 최후의 개척지'로 규정했습니다.

최근에는 TV 리얼리티 쇼들이 이러한 야생의 이미지를 영리하게 소비하고 있습니다.

디스커버리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서 방영된 <데들리스트 캐치(Deadliest Catch)>, <라이프 빌로우 제로(Life Below Zero)>, <알래스카: 더 라스트 프론티어(Alaska: The Last Frontier)> 같은 서바이벌 예능들이 대표적입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얼어붙은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게를 잡는 거친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며 대중의 시청각을 자극했습니다.

콘텐츠로서의 재미는 확실하고 알래스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어올린 공로는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의 모든 삶을 너무 고립된 오지의 풍경으로만 가두어 버리는 부작용도 낳았습니다.

앵커리지 배경 메가히트 드라마, Northern Exposure - Anchorage - 2

하지만 실제 앵커리지(Anchorage)는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아온 풍경과는 꽤나 많이 다릅니다.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고 현대적인 쇼핑몰, 세련된 레스토랑, 완벽한 의료 시설과 고속 인터넷망까지 갖추고 있는 아주 훌륭한 현대 대도시거든요.

뉴욕이나 서울 같은 메트로폴리스의 편리한 인프라를 그대로 누리면서, 차로 조금만 나가면 장엄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축복받은 도시'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오지 생존기만 보다가 실제 앵커리지의 세련된 도심 풍경을 마주하면 묘한 배신감마저 들 정도니까요. 그래서 가끔은 앵커리지의 현실적이고 쾌적한 도시 라이프 스타일이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미디어가 가려버린 실제 알래스카 도시의 진짜 얼굴과 그 이면의 생생한 현실이 궁금하시다면, 힐러리 스웽크 주연의 최근 드라마 <알래스카 데일리(Alaska Daily)>를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2020년대에 방영된 이 웰메이드 저널리즘 드라마는 뉴욕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커리어가 꺾인 베테랑 기자가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실제 로컬 일간지 편집국으로 이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알래스카를 단순히 오로라나 구경하는 관광지나 곰이 나오는 야생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앵커리지라는 현대적 도시 내부에서 로컬 기자들이 치열하게 취재하고 마감에 쫓기는 역동적인 일상을 아주 현실감 있게 그려냅니다.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세련된 주민들의 생활 양식은 물론, 알래스카 원주민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이나 실종 사건 같은 묵직한 지역적 현안까지 정면으로 다루죠. 주인공이 화려한 뉴욕을 떠나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점차 앵커리지라는 도시의 끈끈한 커뮤니티와 독특한 매력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아주 밀도 높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아, 알래스카 사람들도 결국 우리처럼 아침에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출근하고, 지역 신문을 읽으며 도시의 문제를 고민하는구나" 하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환상 속의 가짜 겨울 왕국이 아니라,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진짜 알래스카의 현재를 만나고 싶다면 <알래스카 데일리> 속 앵커리지의 이야기로 빠져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미디어가 만든 편견을 깨는 아주 멋진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