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네트워크, 내향인도 통하는 인맥 쌓는 법 - Kansas City - 1

회사에서 주최한 네트워킹 행사에 갔다가 음료 한 잔만 들고 구석에 서 있다가 온 적이 있다. 명함은 몇 장 받았지만 정작 이름도 다 기억나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자기 홍보를 하는 게 체질에 안 맞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을 거다. 문제는 미국 직장 생활에서 이 네트워킹이라는 걸 피해 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거다.

실제로 올해 발표된 한 설문에서 확인된 수치가 있다. 미국 성인 근로자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4퍼센트가 지인이나 인맥을 통해 지금 일자리를 얻었다고 답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높은 숫자였다.

같은 조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더 있었다. 응답자의 21퍼센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추천을 부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구직 활동에서 가장 도움이 됐다고 꼽은 수단도 갈렸다. 개인적인 인맥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32퍼센트, 직장에서 쌓은 인맥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28퍼센트였다.

같은 설문에서 응답자의 34퍼센트는 네트워킹을 더 적극적으로 못 하는 이유로 자신감 부족을 꼽았다. 그리고 구직 중인 사람의 60퍼센트에 가까운 숫자가 가까운 지인 몇 명에게만 연락하거나 아예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내향적인 성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먼저 손 내밀고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뜻이다.

회사 차원의 추천 채용도 숫자로 보면 만만치 않다. 2024년 채용 중 17퍼센트가 직원 추천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추천을 통한 지원서는 전체 지원서의 2퍼센트에 그쳤지만, 실제 채용으로 이어진 비율은 11퍼센트나 됐다. 숫자만 봐도 추천 지원서 한 장이 갖는 무게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속도 차이도 분명했다. 추천으로 채용된 경우 평균 29일 만에 절차가 끝났고, 다른 경로로 채용된 경우는 평균 39일이 걸렸다.

추천으로 입사한 직원의 근속률은 다른 경로로 입사한 직원보다 45퍼센트 더 높았다. 회사 입장에서도 인맥을 통한 채용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왜 이렇게 인맥이 중요한 걸까. 미국 회사들은 자리가 나면 공고부터 올리기보다 내부에서 아는 사람부터 먼저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회사 게시판에 올라오지도 않고 조용히 채워지는 자리가 생각보다 많다는 뜻이다. 이런 자리는 지원서를 아무리 잘 써도 존재 자체를 모르면 지원할 방법이 없다.

미국에서 네트워킹은 파티에서 화려하게 사람을 사귀는 걸 뜻하지 않는다. 커피 한 잔 하자는 짧은 메시지, 링크드인에서 주고받는 몇 마디, 점심시간에 나누는 잡담이 전부 여기에 들어간다.

링크드인 하나만 봐도 규모가 짐작이 간다. 미국 내 링크드인 회원 수만 2억 7천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니 이력서만 잘 써서 던져놓고 기다리는 방식은 애초에 절반의 전략밖에 안 되는 셈이다. 프로필 관리와 최소한의 온라인 인맥도 이력서 못지않게 중요하게 취급되는 게 이 동네 방식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네트워킹에 불리하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낯선 사람과 잡담을 오래 못 이어가는 대신 한 사람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 데는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많은 행사보다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가 훨씬 잘 맞는다. 여러 명이 뒤섞인 자리에서 애써 말을 만들어내느니 한 사람과 커피 한 잔 하며 진짜 대화를 나누는 편이 남는 게 많다.

행사에 가기 전에 질문 몇 개를 미리 정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말을 지어내려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지, 미리 준비한 질문 두세 개만 있어도 대화는 어렵지 않게 굴러간다.

행사 전에 링크드인으로 참석자 이름을 미리 확인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완전히 낯선 얼굴이 아니라 이름 정도는 아는 사람이 되면 먼저 다가가는 문턱이 눈에 띄게 낮아진다.

사람을 만난 뒤에는 24시간에서 48시간 안에 짧게라도 연락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명함만 받아 놓고 서랍에 넣어두면 그 인연은 그날로 끝난다.

행사에 얼마나 있을지 미리 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요령이다. 한두 사람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눴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굳이 끝까지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다.

낯선 사람 앞에서 갑자기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이미 편한 동료나 지인을 상대로 먼저 연습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인사, 소개, 질문을 던지는 흐름을 몸에 익혀두면 낯선 자리에서도 덜 긴장하게 된다.

결국 열 명과 겉핥기 인사를 나누는 것보다 한 명과 제대로 통하는 대화를 하는 쪽이 남는 게 많다. 숫자를 늘리는 데 힘 뺄 필요 없이 깊이를 택하는 쪽이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더 맞는 전략이다.

누군가에게 소개나 도움을 부탁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동네에서는 그게 예의 없는 부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거래에 가깝다. 부탁한 사람은 나중에 상대가 부탁할 때 되갚으면 그만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 잘하는 재주는 원래 없는 편이라 이런 자리가 늘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묵묵히 커피 약속 하나씩 잡고 링크드인 메시지 하나씩 보내는 쪽이, 화려하게 떠들다 마는 것보다 결국은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