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이 되면 달력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날짜가 하나 있습니다. 11월 11일, 베테랑스 데이입니다.
마트 할인 전단이나 은행 휴무 공지로만 기억하기 쉬운 날이지만, 이 날짜에는 꽤 정확한 시각이 붙어 있습니다.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 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의 총성이 멎은 순간입니다.
숫자 세 개가 나란히 맞아떨어지니 누가 일부러 맞춘 것처럼 보이죠. 실제로 그 상징성 때문에 시각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져 왔습니다.
그런데 휴전 협정에 서명이 이뤄진 건 11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새벽 5시 무렵, 프랑스 콩피에뉴 숲에 세워둔 열차 객차 안에서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원수와 독일 대표단이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서명 시각은 자료마다 5시, 5시 10분으로 조금씩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확실한 건 서명과 발효 사이에 여섯 시간 가까운 간격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여섯 시간이 저는 늘 마음에 걸립니다. 전쟁이 끝난다는 걸 양쪽 지휘부가 다 알고 있었는데, 전선에서는 그 시간에도 포격과 돌격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 쓰러진 병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볼티모어 출신의 헨리 귄터 병장입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그가 오전 10시 59분, 휴전 발효를 단 1분 앞두고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향해 뛰어가다 총에 맞았다고 전합니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그 시각을 10시 58분으로 적고 있습니다. 1분이든 2분이든, 조금만 더 엎드려 있었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미군 원정군 사령관 퍼싱 장군은 다음 날 그를 1차대전에서 전사한 마지막 미군으로 공식 기록했습니다. 그가 왜 그 순간 일어섰는지를 두고는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엇갈립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버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끝이 코앞인데 그 마지막 몇 분이 가장 길고 위험할 때가 있으니까요.
회사 일도, 인생의 고비도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거의 다 왔다고 느끼는 순간에 무리하다 넘어지는 경우를 저도 여러 번 봤습니다.
총성이 멈춘 지 꼭 1년 뒤인 1919년 11월 11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이날을 첫 번째 휴전기념일, 아미스티스 데이로 선포했습니다.
처음엔 1차대전 참전 용사를 기리는 날이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제정된 법으로 11월 11일은 연방 공휴일이 됐습니다.
이름이 바뀐 계기는 그다음 전쟁이었습니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참전 용사가 훨씬 많아지자, 1차대전만 기리는 이름이 현실과 맞지 않게 된 겁니다.
앨라배마 버밍햄의 2차대전 해군 출신 레이먼드 윅스는 1947년 고향에서 모든 참전 용사를 위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베테랑스 데이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54년에는 캔자스주 출신 에드워드 리스 하원의원이 낸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6월 1일 개정안에 서명하면서 아미스티스라는 단어가 베테랑스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이 이 이름 안에 함께 들어가 있다는 점이 한인으로서 괜히 마음에 남습니다. 그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삶도 많이 달랐을 테니까요.
재미있는 건 이 날짜가 한 번 흔들렸다는 사실입니다. 1968년 통과된 통일 공휴일법으로 베테랑스 데이는 10월 넷째 월요일로 옮겨졌고, 1971년 10월 25일 처음 그렇게 지켜졌습니다.
연휴를 만들자는 취지였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여러 주가 원래 날짜를 고집했고, 참전 단체들도 반대했습니다.
결국 1975년 포드 대통령이 서명한 법에 따라 1978년부터 다시 11월 11일로 돌아왔습니다. 요일보다 그날 그 시각의 의미가 더 무겁다는 걸 사람들이 확인한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참 미국답다고 느낍니다. 편리함을 택했다가도 기억의 무게 앞에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고집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가장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캔자스시티 언덕 위의 리버티 메모리얼, 지금의 국립 1차대전 박물관이라고 생각합니다.
1921년 11월 1일 이 부지 헌정식에는 포슈 원수와 퍼싱 장군을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의 지휘관까지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1926년 11월 11일, 쿨리지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탑이 정식으로 헌정됐습니다.
탑 아래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면 바람이 꽤 차갑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으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이상하게 가라앉습니다.
올해 베테랑스 데이는 수요일이라 출근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오전 11시에 잠깐 손을 멈추고 1분만 조용히 있어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주변에 참전 경험이 있는 어르신이 계시다면 짧은 안부 한마디도 좋겠습니다. 거창한 행사보다 그런 작은 인사가 더 오래 남는 법이니까요.
총성이 멈춘 그 11시는 끝까지 버틴 사람들이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고비에서 마지막 1분을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버텨 보면 좋겠습니다.

goldenvalleytraveler1919
sunsetdreamrider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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