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네 아이가 다섯 살 땐 스파이더맨 아니면 대화가 안 됐어요. 밥 먹을 때도, 잠들기 전에도, 목욕할 때도 온통 스파이더맨 얘기였죠. 가방도 신발도 죄다 빨간색 거미 무늬였고요.
근데 초등학교 3학년쯤 되니까 갑자기 스테픈 커리 얘기만 하는 거예요. 슈퍼히어로는 어느 순간 조용히 자취를 감췄더군요.
이게 그 집 아이만의 특이한 케이스인가 싶어서 자료를 좀 찾아봤어요. 미국 부모들도 비슷한 걸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거든요. 생각해보면 저도 비슷한 전환을 겪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더라고요.
마침 올해 나온 설문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4세에서 12세 아이 2천 명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한 조사였어요.
아이들이 진짜 영웅으로 꼽은 1위는 부모님이었어요. 71퍼센트가 그렇게 답했으니 압도적이었죠.
선생님이 40퍼센트, 형제자매가 37퍼센트로 그 뒤를 이었어요. 매일 얼굴 보는 사람이 결국 1순위였던 셈이에요.
친척이 33퍼센트, 친구가 31퍼센트로 다음 순위에 자리 잡았고요. 순위 상위권을 가까운 사람들이 거의 다 채운 셈이에요.
흥미로운 건 그다음 순위예요.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29퍼센트를 차지했거든요.
유명인과 만화 캐릭터는 각각 22퍼센트로 뒤를 이었어요. 순위만 보면 캐릭터가 밀린 건 맞지만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죠.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블랙팬서는 여전히 이름을 올렸어요. 요즘 유행하는 소닉이나 블루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까지 등장했더라고요.
다만 그 옆자리에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같은 실존 선수 이름도 나란히 있었다는 게 눈에 띄었어요.
제가 주목한 건 나이대에 따른 변화였습니다. 유치원 때는 캐릭터가 강세지만 초등 고학년쯤 되면 실제 선수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이요.
이 시기가 딱 겹치는 지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아이들이 직접 운동을 시작하는 나이예요.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죠.
미국 아이들의 스포츠 참여율은 지난해 58퍼센트까지 올랐어요. 9세에서 12세 사이에 정점을 찍는다고 하더군요.
공을 직접 던져보고 슛을 넣어본 아이는 화면 속 선수를 보는 눈이 확실히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심리학에서는 이걸 관찰 학습이라고 부르더군요. 자기와 닮았다고 느끼는 대상을 보면서 배운다는 이론이에요.
하늘을 날고 거미줄을 쏘는 캐릭터는 멋있긴 한데, 그건 내가 절대 될 수 없는 존재잖아요.
반면 농구선수는 나랑 똑같은 두 다리로 뛰고, 나랑 똑같은 손으로 공을 던져요. 그 몸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게 핵심이죠.
그 차이 하나가 우상의 자리를 슬그머니 바꿔놓는 거예요. 직접 해봤다는 경험 하나가 존경의 방향을 통째로 틀어버리는 셈이죠.
게다가 만화는 결말이 정해져 있어요. 몇 번을 돌려봐도 스파이더맨은 결국 이기죠. 그 안전함이 어릴 땐 위안이 되지만, 크면서는 좀 심심하게 느껴지나 봐요.
스포츠는 다음 장면을 아무도 몰라요. 어제까지 잘나가던 선수가 오늘 부상으로 주저앉기도 하고요.
이 각본 없는 불확실성이 아이들을 오히려 더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도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라이브 무대의 실수와 회복이 녹음된 음원보다 더 짜릿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리듬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흐름이 어제오늘 생긴 것도 아니에요. 뿌리를 따라가면 1880년대 담배 회사들이 팔던 카드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그 카드에 선수 얼굴을 박아 넣은 이유는 뻔했어요. 아이들이 카드를 모으겠다고 부모를 조르게 만들려는 마케팅이었죠.
진짜 폭발적으로 커진 건 1950년대, TV가 집집마다 들어오면서였어요.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조니 유나이타스, 빌 러셀 같은 이름이 매주 안방 화면에 나타났으니까요. 학교 운동장에서는 그 얼굴이 그려진 카드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다녔고요.
그 세대 아이들에게 선수는 만질 수 있고 모을 수 있는 우상이었던 셈이에요. 지금은 카드 대신 하이라이트 영상과 SNS 계정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뿐, 본질은 크게 안 변한 것 같아요.
다만 이 현상을 마냥 좋다고만 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존경과 맹신의 경계가 흐릿해지기 쉽거든요.
연구자들은 아이가 선수를 완벽한 존재로만 믿을 때, 그 선수가 흠집 나는 순간 실망이 훨씬 크다고 경고해요.
스포츠 참여 자체도 소득에 따라 갈려요. 저소득 가정 아이들의 참여율은 36퍼센트대에 머물러 있는데, 이건 결국 우상을 고를 기회 자체가 평등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해요.
결국 누구를 우상으로 삼느냐는 그 아이가 어떤 걸 직접 만져보고 뛰어봤는지와 맞닿아 있는 셈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흐름이 싫지 않아요. 완벽한 히어로보다 실수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을 보는 쪽이 훨씬 리듬감 있는 이야기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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