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속도로 휴게소에 캠핑카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오래 머물러요.
창에 걸린 작은 커튼이며 옆에 펼쳐둔 접이식 의자를 보면, 그 안에서 사는 하루가 어떤 모습일지 자꾸 상상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가 희끗한 경우가 유독 많더라고요. 젊은 커플보다는 부부 둘만 여행하는 모습이 훨씬 자주 눈에 띄었어요.
처음엔 그냥 은퇴자들 취미인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자꾸 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어요. 왜 하필 이 시기에, 왜 하필 캠핑카일까 싶더라고요.
미국 RV산업협회, 흔히 RVIA라고 부르는 곳이 최근 낸 소유주 조사를 찾아봤더니 답이 어느 정도 나왔어요. 매년 발표되는 자료라 믿을 만했고요.
흔히 떠올리는 대형 버스형 캠핑카, 클래스 A 모터홈 소유자의 42퍼센트가 은퇴한 사람들이었어요.
55세 이상 비율은 66퍼센트였고, 그중 74퍼센트는 집에 함께 사는 자녀가 없는 가구였답니다.
숫자만 봐도 캠핑카가 단순한 여가용품이 아니라 인생의 특정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게 보이죠. 자녀를 다 키워 보낸 직후거나 은퇴를 앞두었거나 막 시작한 직후라는 뜻이니까요.
자녀들이 하나둘 집을 떠나고 나면 집이 갑자기 넓어진 느낌이 들잖아요. 아침저녁으로 오가던 발소리가 사라진 자리를 뭘로 채워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방은 그대로 있는데 그 안에 사람이 없으니 빈자리만 자꾸 눈에 밟혀요. 그렇다고 그 방을 없애자니 그것도 이상하게 아쉽고요.
그런데 이 시기에 많은 미국인들이 택하는 건 집을 줄이는 쪽이 아니라 바퀴 달린 공간을 새로 들이는 쪽이었어요. 정착 대신 이동을 고르는 셈인데, 처음엔 이 발상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죠.
이유를 들어보면 별로 거창하지 않아요. 매번 짐 싸서 공항 가고 호텔 예약하는 일이 지겨워졌다는 거였죠.
내 침대, 내 화장실, 내 부엌을 그대로 끌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나이 든 여행자들에게는 꽤 큰 매력으로 작동하는 모양이에요.
낯선 숙소에서 뒤척이는 밤이 줄어드니 여행 자체가 덜 피곤해진다는 얘기도 여러 번 봤고요.
실제로 캠핑장 체인 KOA의 연례 캠핑 보고서를 보면 2023년 캠핑객 중 베이비붐 세대 비중이 26퍼센트로, 전년보다 19포인트나 뛰었대요.
짧은 기간에 이렇게 늘었다는 건 이 세대가 갑자기 캠핑카 쪽으로 돌아섰다는 뜻이겠죠.
같은 조사에서 은퇴 세대 여행자 중 34퍼센트가 앞으로 1년 안에 캠핑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건 캠핑카 구매 자체는 젊은 층에서도 늘고 있다는 점이에요.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가 자리 잡으면서 이런 흐름이 더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많았고요.
RVIA에 따르면 2022년 신규 구매자 중 밀레니얼과 엑스 세대 비중이 84퍼센트였고, 첫 구매자 평균 나이는 32세였답니다.
그러니까 캠핑카가 이제 은퇴자만의 물건은 아닌 셈인데, 나이 든 세대가 여기 몰리는 이유는 젊은 층과는 결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에게 캠핑카가 원격근무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라면,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몸이 아직 움직일 때 미뤄둔 일을 해치우는 수단에 가깝더라고요.
국립공원을 순회하는 장기 여행이 은퇴 후 버킷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몇 주씩 시간을 들여야 하는 여행은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애초에 시도하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날씨도 무시 못 할 이유예요. 겨울마다 추운 지역을 떠나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는 스노버드 생활이 캠핑카가 있으면 훨씬 수월해지거든요.
관절이 시린 계절을 피해 다닐 수 있다는 건 나이가 들수록 더 실감 나는 이유일 거예요. 병원 갈 일이 잦아지는 나이일수록 몸이 덜 힘든 쪽을 고르게 되는 것 같고요.
캠핑장마다 열리는 포트럭 모임이나 게임 나이트 같은 소소한 행사도 한몫하죠. 낯선 사람들과 저녁마다 인사를 나누는 게 번거로울 법도 한데, 오히려 그게 좋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은퇴 후에는 사람 만날 일이 부쩍 줄어드는 게 현실인데, 캠핑카 커뮤니티가 그 빈틈을 꽤 잘 채워주는 편이었어요.
일부는 아예 계절마다 국립공원이나 캠핑장에서 짧게 일하는 이른바 워캠퍼로 살아가기도 해요. 여행 경비도 벌고 사람도 만나니 은퇴 후 삶으로는 꽤 실용적인 선택처럼 보였어요.
나도 한때 이 라이프스타일에 혹해서 견적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연료비와 정비비 앞에서 마음을 접었답니다.
큰 모터홈일수록 연비가 뚝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환경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 선택인가 싶은 마음이 계속 걸렸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커다란 모터홈 대신 작은 캠퍼밴이나 경량 트레일러 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었대요. 몸집을 줄인 만큼 연료도 덜 쓰고 주차도 수월해지니 여러모로 합리적인 방향 같고요.
결국 캠핑카를 산다는 건 어딘가로 도망친다는 뜻이 아니라, 몸이 허락하는 동안 미뤄뒀던 챕터를 펼치겠다는 선언에 가까워 보여요.
나라면 당장 큰 차부터 사기보다는, 일단 며칠 빌려서 그 생활이 진짜 나한테 맞는지부터 확인해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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