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다 보니 제 직업의 특성상 안타까운 사연의 환자들을 많이 접하게 되곤 합니다.
며칠 전 63세 한인 남성 A씨가 그랬어요. 고혈압 고위험군에 속하는 분이 몇 달 전부터 혈압이 160을 넘나들어서 약을 처방해 드렸는데, “약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며 매일 제시간에 복용을 하지 않고 슬쩍 건너뛰곤 하셨죠. 운동을 권하면 “주말에 가끔 치는 골프가 운동입니다”라며 어깨를 으쓱했고, 복부지방의 위험성을 이야기 하면 “고기 없으면 밥맛이 안 난다”는 농담까지 곁들였습니다.
그러던 분이 갑작스레 쓰러져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CT 결과는 뇌졸중. 막힌 혈관이 뇌를 질식시키고 있었습니다. 골든타임 언저리였는데 급히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재활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침대에 누워 저를 바라보며 “내가 매일 약만 잘 먹었어도…” 하는 그분의 한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뇌졸중을 날벼락처럼 찾아오는 재앙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뇌졸중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생활습관과 무관심이 결국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성적표 같은 결과물입니다.
의학적으로 뇌졸중은 크게 두 가지죠. 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뇌경색이 전체 환자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혈관이 터져 생기는 뇌출혈이 20% 남짓을 담당합니다. 막히든 터지든, 뇌세포가 산소 공급을 잃는 순간부터 손상은 빠르게 진행됩니다. 바로 그 몇 분, 몇 시간이 평생의 삶의 질을 갈라놓습니다.
한인 사회가 특히 취약한 건 우리가 가진 습관과 기질 때문입니다.
짜고 매운 음식 없이 못 견디고, 스트레스를 풀기보다 꾹 참고 넘어가는 문화, “아직 괜찮은데”라며 병원을 뒤로 미루는 태도 말이죠.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뇌혈관이 선천적으로 가늘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같은 조건에서도 더 쉽게 막히거나 터질 수 있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한인여성 43세 B씨가 좋은 예입니다. 두통이 오래간다며 진통제만 먹다 오셨는데, MRI에서 조그만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동맥류가 잡혔습니다. 며칠 뒤 그 풍선이 터졌고, 한쪽 시력을 잃은 채 휠체어에 앉아 아직 어린 자녀들의 손을 더듬어 찾는 모습을 보면, 의료진인 저조차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사실 뇌졸중 예방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고혈압을 130/80 아래로 유지하고, 당뇨와 콜레스테롤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하루 30분만이라도 땀이 살짝 날 만큼 걷는 것. 놀랍게도 이 평범한 습관들이 뇌경색과 뇌출혈, 둘 다 막아 주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일이 너무 바빠서”, “병원비가 부담돼서”라며 등을 돌립니다. 하지만 쓰러진 뒤 들어가는 병원비와 가족의 부담은 상상 이상입니다. 건강검진 한 번에 망설였던 몇 백 달러가 나중에는 몇 만, 몇 십 만 달러짜리 고통으로 되돌아오곤 하니까요. 목숨을 잃는 뇌출혈이라면 몇백만불로도 대체가 될 수 없는겁니다.
“어차피 사람은 다 늙고 언젠가 죽지”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맞습니다.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죠.
다만 뇌졸중이 무서운 건, 갑작스러운 죽음보다 오래 남는 후유증입니다. 팔다리가 내 뜻과 달리 움직이지 않고, 의식이 있으면서도 남이 대소변을 수발해 주어야 하고, 아니면 기억이 흐릿해진 채로 남은 평생을 살다가 죽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노후’일까요?
병원은 아플 때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미래의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투자처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는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신다면,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일지 모릅니다. 뇌졸중은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30대에도, 40대에도, 지칠 줄 모르는 회사원에게도, 육아에 바쁜 부모에게도 찾아옵니다. 예방이란 결국 ‘바쁘다’는 핑계를 꺾고 스스로를 챙기는 일상의 작은 결심에서 시작됩니다.
뇌졸중은 돌연변이나 천재지변이 아닙니다. 우리의 식사습관, 음주, 흡연습관, 고혈압 유발 생활습관등이 누적되다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결과입니다.
그 현실을 안다면, 그리고 조금만 일찍 움직인다면, 여러분의 노후는 생각보다 훨씬 길고, 훨씬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신 뒤, 잠깐이라도 혈압을 체크해 보시고,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챙겨보세요.
건강은 선물 같은 게 아닙니다. 매일매일 챙겨야 하는 일상의 결과예요.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지 않게 사는 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도 병원에서 그 이야기를 합니다. 괜찮다고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할 때라는 걸 한 분이라도 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