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나이 들어 작은 집을 택하는 진짜 이유 - Leonia - 1

얼마 전에 알고 지내던 미국인 부부가 사연을 하나 들려줬다. 40년 가까이 살던 이층집을 팔고 방 두 개짜리 콘도로 옮긴다는 얘기였다.

자녀들은 이미 다 커서 각자 독립했고, 부부 둘만 남은 그 큰 집이 이제는 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처음엔 그렇게 넓고 좋은 집을 왜 굳이 줄이나 싶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흐름을 아예 따로 통계로 잡아둔다. 자녀가 독립한 뒤 남는 방이 두 개 이상이고, 그 집에서 십 년 넘게 산 55세 이상 가구를 별도로 구분하는 식이다.

이런 가구가 전체 미국 가정의 16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조사가 있었다. 열 집 중 한 집 반이 넘게 방을 비워둔 채 산다는 뜻이니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게다가 부부만 남았거나 자녀 한둘만 있는 베이비붐 세대 가구가 미국 내 대형 주택의 28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반면 정작 넓은 집이 필요한 밀레니얼 세대 가족은 그중 16퍼센트만 가지고 있다.

집이 필요한 사람과 집을 가진 사람이 서로 어긋나 있는 셈이라, 요즘 미국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 세대의 움직임을 주택 공급 문제의 열쇠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어긋남을 두고 '실버 쓰나미'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다만 막상 이사를 하더라도 무작정 아무 데나 가는 건 아니고, 자녀가 사는 도시나 해안 지역 근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지역의 집값을 더 밀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정작 나이 든 미국인 대부분은 이사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AARP 조사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79퍼센트가 가능한 한 지금 사는 집에서 오래 살고 싶다고 답했다.

다른 조사에서는 집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 세 명 중 한 명이 앞으로 절대 집을 팔지 않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말로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막상 이사를 결심하는 순간에는 상당수가 작은 집을 택한다. 은퇴 후 실제로 이사를 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그중 절반 정도가 이전보다 작은 집으로 옮겼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사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절반 이상은 계단 없는 단층집을 찾는다고 답했고, 그중 4분의 3은 아예 더 작은 단독주택으로 줄이는 쪽을 고려한다고 했다.

즉 웬만하면 안 움직이려 하지만, 일단 움직이기로 마음먹으면 대부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얘기다.

이 마음먹는 지점이 궁금해서 몇몇 사례를 더 찾아보고 주변에도 물어봤는데, 가장 많이 나온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청소하고 관리할 공간이 줄어들면 몸이 편해진다는 거였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부담스러워지고, 잔디 깎고 낙엽 치우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돈 문제였다. 큰 집일수록 재산세와 난방비, 보험료가 같이 커지니 작은 집으로 옮기면 매달 나가는 고정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세 번째 이유는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이야기였는데, 자기가 떠난 뒤 자녀들에게 정리의 부담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큰 집에 수십 년치 짐이 쌓여 있으면, 그걸 나중에 치우는 몫은 결국 자식들에게 돌아간다.

그걸 미리 알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스스로 정리해두려는 마음이 생기는 듯했다.

짐을 줄이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를 낮추고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으니, 이건 단순히 자식 생각만은 아닌 셈이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정리된 마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서 어쩔 수 없이 집을 줄이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런 경우까지 뭉뚱그려서 다들 홀가분해서 그런다고 말하는 건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든다. 밀려서 줄이는 것과 선택해서 줄이는 것은 결이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미국 전체 주택 소유의 74퍼센트를 50세 이상이 쥐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세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시장 분위기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다운사이징은 개인 사정을 넘어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이 다운사이징이라는 게 밀려나는 선택이라기보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방을 줄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삶의 크기를 스스로 정하는 느낌이랄까.

큰 집을 유지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적당한 때에 줄일 줄 아는 것도 결국 하나의 결단이다.

미련을 남긴 채 오래 버티는 것보다, 필요 없어진 공간을 인정하고 정리하는 쪽이 더 용감해 보일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붙잡는 것보다 놓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나라면 미련 갖다가 늦게 움직이기보다는, 상황이 무르익었을 때 깔끔하게 결정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짐을 줄이는 결정도 결국은 스스로 삶의 다음 챕터를 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