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기 티셔츠는 되고 진짜 성조기는 안 되는 이유 - Las Vegas - 1

몇달전 월마트에 갔다가 입구에 성조기 무늬 티셔츠와 반바지, 수영복, 모자, 비치타월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옆으로 가보니 종이컵과 접시, 냅킨에도 별과 줄무늬가 들어가 있습니다.

한국 대형마트에서 태극기 수영복과 태극기 반바지를 잔뜩 쌓아놓고 판다면 어떨까요.

태극기가 크게 그려진 냅킨으로 삼겹살 기름 닦고 입 닦은 다음 쓰레기통에 버린다면 그것도 조금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 성조기를 다루는 규정이 없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꽤 자세하게 있습니다.

미국에는 Flag Code라는 국기 규정이 있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의외입니다.

국기를 옷이나 침구처럼 사용하지 말고, 광고에 이용하지 말고, 쉽게 버리는 물건에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7월 4일 미국 마트 풍경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규정에서는 옷에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마트에서는 성조기 비키니까지 팝니다.

규정에서는 일회용품에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마트에서는 성조기 종이접시와 냅킨을 한 묶음씩 팝니다.

규정에서는 광고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독립기념일만 되면 자동차 회사부터 맥주, 햄버거, 가구 광고까지 별과 줄무늬가 넘쳐납니다.

그러니까 법에 적힌 내용만 보고 미국 생활을 상상하면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릅니다.

왜 이럴까 궁금해서 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Flag Code는 일반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기보다 국기를 이렇게 다루는 것이 좋다는 예절 지침에 가깝습니다.

또 실제 성조기를 잘라서 반바지를 만드는 것과 성조기 모양을 옷에 프린트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도 실제 깃발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은 싫어하면서 성조기 반바지를 입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처음에는 조금 헷갈립니다.

국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학교에도 성조기가 있고 관공서에도 있고 집 앞에 걸어놓는 사람도 많습니다. 군인 장례식에서는 국기를 아주 엄숙하게 다룹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나라에서 해변에 가면 성조기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닙니다.

한쪽에서는 엄숙하고 한쪽에서는 너무 자유롭습니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성조기 티셔츠나 반바지는 나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7월 4일에 뒷마당 바비큐 파티를 가면 성조기 옷을 입은 사람이 한두 명씩 있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 냅킨은 조금 이상합니다.

성조기 무늬 냅킨으로 바비큐 소스를 닦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는 모습을 보면, 허, 저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듭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미국다운 것 같습니다.

규정은 있습니다.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도 적어놨습니다. 그런데 개인이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는 상당 부분 각자에게 맡겨둡니다.

그래서 7월 4일 마트에 가면 참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한쪽에는 성조기를 존중해서 다루라는 오래된 국기 규정이 있고, 현실의 마트에는 성조기 수영복과 반바지와 종이접시와 냅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규정만 보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참 많은데, 현실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 성조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다 보면 법에 적힌 미국과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미국 사이에는 이런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