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러싱의 저녁은 묘한 데가 있다. 해가 기울 무렵 메인 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식당 간판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고, 마켓에서 장을 본 어르신들이 양손에 봉투를 들고 천천히 집으로 향한다. 한국말도 들리고 중국말도 들린다. 그런데 오래전 플러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요즘 이 거리를 걸으며 세월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플러싱에 한국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70~80년대였다. 그 시절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에게 선택지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영어는 서툴렀고 가진 돈도 넉넉하지 않았다. 맨해튼은 비쌌고 플러싱은 그나마 집세를 감당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모였다. 식당을 열고 세탁소를 하고 마켓을 만들었다. 교회가 생겼고 병원, 약국, 부동산, 미용실도 들어섰다.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 일자리를 소개하고 아파트 구하는 법을 알려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인타운이라는 게 누군가 계획해서 만든 동네가 아니었다. 이민자들이 살아남으려고 서로 붙잡고 살다 보니 만들어진 동네였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전후를 지나면서 플러싱의 중국계 인구와 자본의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물론 중국계 커뮤니티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플러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만계 이민자들이 일찍 기반을 만들었고 홍콩계가 합류했으며, 이후 중국 본토 출신 이민자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상권의 모습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중국 식당과 마켓, 은행, 부동산, 여행사, 의료기관이 빠르게 늘었다. 중국계 개발 자본까지 들어오면서 오래된 저층 상가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갔다. 예전에는 한국어 간판이 자연스럽게 보이던 자리에 어느 날 중국어 간판이 걸려 있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인 상권은 조금씩 동쪽으로 움직였다. 유니온 스트리트와 노던 블러바드를 따라 베이사이드 방향으로 옮겨갔고, 생활이 안정된 한인 가정들은 베이사이드, 리틀넥, 그레이트넥과 롱아일랜드 쪽으로 빠져나갔다. 일부는 뉴저지로 건너갔다.
그러다 보니 옛날 플러싱 한인타운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쓸쓸한 마음도 든다. 장사가 잘되던 한인 가게가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다른 간판이 올라온다. 단골손님과 함께 늙어가던 식당도 하나둘 사라진다. 한인 상권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노던 블러바드를 따라 강한 한인 상권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중심이 이동했고 예전처럼 플러싱 중심부를 한인들이 채우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뉴욕이라는 도시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온 사람들이 터를 만들고, 그다음 사람들이 들어와 다시 도시를 바꾼다.
저녁 무렵 플러싱 거리를 걷다가 나이 든 한인 어르신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스물몇 살, 서른몇 살 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가게 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일했을 것이다. 아이들 공부시키고 집 한 채 마련하려고 그렇게 몇십 년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는 희어졌고 자신들이 만들었던 동네는 다른 언어와 다른 세대의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이민자의 인생이 원래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내 자리를 만들려고 죽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할 때쯤 세상이 먼저 변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플러싱의 오래된 한국 간판 하나가 괜히 반갑다.
낡아서 반가운 게 아니다.
그 간판 뒤에 누군가의 젊은 시절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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