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눈치 없다는 말이 오히려 칭찬이 되는 이유 - Pasadena - 1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신입 직원이 회의 중에 손을 번쩍 들고 이거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고 대놓고 묻는 장면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본인은 그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인데, 지켜보는 쪽에서는 순간 살짝 움찔하게 된다.

다들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저런 질문을 던지면 한국 회사에서는 대번에 쟤 눈치 없네 하는 눈초리가 날아온다.

그런데 같은 상황을 미국 사무실에서 지켜보면 반응이 정반대다. 상사가 오히려 좋은 질문이다,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답한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분위기 못 읽는 사람을 왜 칭찬하나 싶었으니까.

그런데 미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이게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돌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1976년 저서 비욘드 컬처에서 문화를 고맥락과 저맥락으로 나눠 설명했다. 이 개념은 지금도 문화 간 소통 차이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저맥락 문화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말 안에 다 담아야 한다. 상대가 알아서 속뜻을 짐작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보다 분위기와 표정, 관계 속에 의미가 숨어 있다. 한국의 눈치 문화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홀의 분류에서 미국은 대표적인 저맥락 사회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은 고맥락 사회로 꼽힌다. 일본이나 중국 역시 비슷한 고맥락 사회로 분류되니, 눈치라는 개념이 한국만의 특수한 정서는 아닌 셈이다.

수치로도 이 차이는 꽤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화심리학자 헤이르트 홉스테드의 개인주의 지수에서 미국은 91점, 한국은 18점이다.

100점에 가까운 점수와 20점도 안 되는 점수라니, 같은 지구에 살면서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더라.

개인주의 점수가 높다는 건 각자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게 당연한 사회라는 뜻이다. 남이 알아서 눈치껏 챙겨주길 기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미국 부모들이 어린아이한테 네 생각을 말해봐 하고 자꾸 되묻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말을 안 해도 부모가 알아서 척척 챙겨주는 한국식 육아 풍경과는 시작부터 결이 다르다.

식당에서도 아이가 직접 메뉴를 고르고, 싫으면 싫다고 바로 말하게 시킨다. 부모가 알아서 아이 취향을 짐작해 대신 말해주는 일은 드물다.

흥미로운 건 개인주의라는 단어 자체의 내력이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31년 미국을 여행한 뒤 이 말을 처음 만들어냈다.

1835년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그는 개인주의를 사람들이 가족과 소수의 친구 무리 속으로만 파고들어 더 넓은 공동체와 멀어지는 현상으로 설명했다.

재밌는 건 토크빌이 이 단어를 딱히 좋은 뜻으로만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경계했다.

그런 단어가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미국 사회의 미덕으로 자리 잡았으니, 세월 참 얄궂다. 정작 단어를 만든 당사자가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실생활에서 이 차이는 꽤 실용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회사에서 지시를 못 알아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묻는 문화가 그렇다.

한국식으로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나중에 옆 동료한테 슬쩍 물어보는 방식은, 미국 상사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이해했는지 못했는지는 본인 책임이라는 개인 책임 문화가 이 저맥락 소통 방식과 딱 맞물려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모르면서 아는 척 넘어가는 쪽이 오히려 무능해 보이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미국 사람들이 무례하거나 배려심이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배려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쪽은 말로 확인하고 말로 존중을 드러낸다. 침묵 속에서 알아서 헤아려주길 바라는 방식과는 결이 다른 거다.

한국에서는 눈치 없다는 말이 곧 사회생활 못한다는 뜻으로 통하는데, 미국에서는 그게 오히려 저 사람 자기 의견이 확실하다는 칭찬으로 둔갑해버린다.

같은 행동을 두고 한쪽에서는 흉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자랑이 되니, 이것도 나름 웃긴 아이러니 아니겠나. 사람을 재는 잣대 자체가 동네마다 이렇게 다르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눈치 없다고 구박받던 사람이 여기 와서는 강단 있다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사람 팔자도 시간과 장소 따라 달라지는가 보다.

물론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 이 직설적인 화법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대놓고 의견을 말하는 게 괜히 무례해 보이지 않을까 한동안 눈치를 보게 되거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이 방식이 편해지는 때가 온다. 속으로 끙끙 앓으며 남의 표정 읽는 것보다, 궁금하면 그냥 묻는 쪽이 정신 건강에는 훨씬 이롭다.

물론 이 화법이 지나치면 배려 없이 할 말만 쏟아내는 사람도 생기니 그것대로 조심할 일이다. 눈치가 아예 없는 것도, 눈치만 보는 것도 둘 다 정답은 아니다.

요즘은 회사에서는 확실하게 묻고 확실하게 말하는 미국식을 따르고,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에서는 여전히 눈치를 켜 놓고 지낸다. 상황 따라 스위치를 바꾸는 셈이다.

눈치가 없다는 말이 한국에서는 흉이지만 미국에서는 신뢰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는 걸, 살아보니 몸으로 배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