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다섯 살 여학생이 혼자 학교 앞에 서 있어요. 뒤에서는 어른들과 또래들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앞에서는 총을 든 주방위군이 길을 막고 있죠.
1957년 9월 4일, 아칸소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 앞에서 찍힌 사진 얘기예요. 저는 이 사건을 교과서 한 줄보다 이 사진으로 먼저 알았는데, honestly 한참을 못 넘기겠더라고요.
사진 속 학생은 Elizabeth Eckford예요. 왜 혼자였냐면, 이유가 너무 사소해서 더 마음이 아파요.
NAACP 아칸소 지부장 Daisy Bates가 학생들이 함께 등교하도록 계획을 바꿨는데, Elizabeth네 집에는 전화가 없었거든요. 연락을 못 받은 거예요. 전화기 한 대가 없어서 그 군중 속을 혼자 걸은 거죠.
순서대로 풀어볼게요. 대법원이 Brown 판결로 공립학교 인종 분리를 위헌이라고 한 게 1954년이에요. 3년이 지났는데도 현장은 그대로였던 거죠.
리틀록 교육위원회가 센트럴 고교부터 흑인 학생을 받기로 하자, Orval Faubus 주지사가 개학 직전인 9월 2일 TV에 나왔어요. 폭력을 막겠다며 주방위군을 동원한다고요.
말은 치안 유지였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을 막는 군인이었어요. 9월 20일에는 연방 판사가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사실 9월 4일에 학교로 간 학생은 국립공원관리청(NPS) 기록상 열 명이었어요. 그중 Jane Hill은 집에 살해 협박이 오면서 아버지 뜻에 따라 원래 학교로 돌아갔고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숫자가 9명이 된 거예요.
9월 23일, 주방위군이 빠지고 경찰만 남은 상태에서 학생들이 드디어 학교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밖의 군중이 폭동 수준으로 번졌고, 결국 그날 오전에 학생들을 몰래 빼내야 했습니다.
여기서 Eisenhower 대통령이 움직여요. 9월 24일에 폭동을 수치스럽다고 비판하면서 101공수사단 투입을 명령하고, 아칸소 주방위군까지 연방 지휘 아래로 넣었어요.
그리고 9월 25일, 101공수사단 병력 1,200명이 동원된 가운데 9명이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등교했습니다. 이날이 이 학생들의 first full day of classes였어요. 수업 한 번 들으러 가는 데 군대가 필요했다는 거예요.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 같죠. 진짜 힘든 건 그다음이더라고요.
군인이 교문까지는 지켜줘도 복도 구석구석까지 막아주진 못했어요. 발로 차이고, 밀쳐지고, 욕을 듣는 일이 화장실과 라커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9명은 같은 수업을 듣지도 못했고, 과외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었어요.
Minnijean Brown은 괴롭힘을 참다못해 맞섰어요. 칠리가 담긴 점심 식판을 백인 남학생 둘에게 쏟았고, 또 다른 언쟁까지 겹쳐 1958년 2월에 퇴학당했습니다. 결국 뉴욕으로 가서 고등학교를 마쳤고요.
저는 이 대목이 제일 씁쓸해요. 몇 달을 맞고 욕먹은 쪽이 그 학생인데, 학교에서 쫓겨난 것도 그 학생이니까요.
1958년 5월, 9명 중 유일한 졸업반이던 Ernest Green이 센트럴 고교 첫 흑인 졸업생이 됐어요. 그 졸업식에는 Martin Luther King Jr.도 와 있었습니다.
제일 놀란 건 그다음 해예요. 1958년 9월 12일 대법원이 통합을 즉시 진행하라고 하자, Faubus는 바로 그날 관련 법안에 서명했어요. 그리고 리틀록의 고등학교 네 곳을 모두 닫아버렸습니다.
같은 달 27일 주민투표에서도 학교를 닫아두자는 쪽이 크게 이겼어요. 흑인 학생과 같은 교실에 앉느니 차라리 학교를 없애겠다는 선택을 도시가 한 거예요.
이 Lost Year 동안 갈 학교를 잃은 학생이 3,665명이에요. 백인 2,915명, 흑인 750명입니다. 차별을 지키려다 자기 아이들 교육까지 내던진 셈이죠.
흐름을 바꾼 건 시민들이었어요. 1959년 5월 초 교육위원회의 강경파가 교사와 직원 44명을 해고하자, 지역 여성 단체와 시민 모임이 소환 운동에 나섰습니다.
5월 25일 강경파 위원 세 명이 소환됐고, 6월에는 연방 법원이 폐쇄를 위헌으로 판단했어요. 학교는 8월 12일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좋아요. 군대가 문을 열어줬다면, 그 문이 다시 닫히지 않게 한 건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표였으니까요.
사진의 뒷이야기도 있어요. Elizabeth를 향해 소리치던 백인 학생 Hazel Bryan은 훗날 사과했고, 1997년에는 두 사람이 학교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국가의 인정은 꽤 늦었어요. 센트럴 고교가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건 1998년 11월 6일이고, 의회 금메달을 백악관에서 받은 건 1999년 11월 9일이에요. 40년 넘게 걸린 거죠.
이 얘기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저는 꽤 상관있다고 봐요. 출신국별 쿼터를 없앤 1965년 이민법도 민권운동 시기의 흐름 속에서 나왔고, 한인 이민이 늘어난 것도 그 이후거든요.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고 차별에 항의할 수 있는 건, 누군가 먼저 그 복도를 걸어준 덕이 커요. 그래서 저는 요즘 공교육이나 다양성 정책을 쉽게 깎아내리는 말을 들으면 좀 불편합니다.
근처를 지나간다면 Central High 국립사적지에 들러보세요. 지금도 수업하는 학교라 내부는 레인저 투어로만 볼 수 있으니, 시간과 예약은 nps.gov/chsc에서 확인하시고요.
아이가 있다면 숫자나 연도 말고 전화기 얘기부터 해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는 아이들도 금방 알아듣거든요. 저라면 거기서 시작할 거예요.

현대자동차키아
푸딩Flyer

Glow Yo | 
미시간 열공 대학생 | 
xylora | 
Tan Zoo | 
hot chocolate | 
jondol | 
new sugar | 

삼뚜기메뚜기쉰라면 | 
Arkansas Kim | 
해뜰날 돌아 온단다 |
citrus pop |
DO 메인 TODAY |
korvex |
tacobunny |
B.I.G. Victor |
콘푸라이트 선생님입니다 |
cyvera80 |
Springs Korea |
Runner Kim |
물리적인 법칙과 과학 |
Lansinger |
honey honey |
dictionary |
silverleaf |
Bany T. |
Korea Forever |
wavey |
Valley Bang |
집에서 즐기는 삼바 |
고로케 그러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