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1만 명 도시가 생겼다, 1889년 랜드런 뒷이야기 - Oklahoma City - 1

아침에는 풀밭이었는데 해 질 무렵에는 1만 명이 사는 도시가 됐다. 처음 들으면 과장 같은데, 1889년 4월 22일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Bricktown 운하 옆 Land Run 기념 조형물 앞에 서면 이 이야기가 다시 떠오릅니다. 말과 마차가 한꺼번에 튀어 나가는 동상인데, 볼 때마다 저 속도감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감상 말고 팩트부터 정리해 봤습니다. 숫자를 보면 이 사건이 훨씬 이상하게 보이거든요.

무대는 Unassigned Lands, 그러니까 어느 부족에게도 배정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지금의 오클라호마 한가운데, 200만 에이커가 넘는 면적이에요.

그런데 이 땅이 원래 빈 땅은 아니었습니다. 남북전쟁 뒤 1866년 조약으로 연방 정부가 크리크와 세미놀 부족에게서 넘겨받은 땅이었죠.

이 부분은 기념 동상에 잘 안 보입니다. 저는 이 맥락을 빼고 Land Run을 개척 정신으로만 말하는 건 반쪽짜리라고 봅니다.

1870년대 말부터는 Boomers라 불린 사람들이 이 땅을 열라고 압박했습니다. 몰래 들어와 정착촌을 만들었다가 군대에 쫓겨나기를 반복했어요.

결국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이 1889년 3월 23일 포고령을 냅니다. 4월 22일 정오에 땅을 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준비 기간이 한 달이 채 안 됐다는 게 놀랍습니다. 지금 같으면 environmental review 하나도 못 끝낼 시간이죠.

포고령에는 조건도 붙어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각 전에 들어가 땅을 차지한 사람은 권리를 잃는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먼저 숨어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을 Sooners라고 불렀습니다. 반칙한 사람들의 별명이 지금은 주의 별명이자 대학 풋볼팀 이름이 됐으니 아이러니하죠.

4월 22일 정오, 총성이 울리고 출발이 시작됐습니다. 오클라호마 역사학회는 이날 참가자를 5만 명으로 봅니다.

그날 해가 질 때 오클라호마시티와 거스리에는 각각 1만 명 이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국 인구조사국도 같은 수치를 소개하고 있어요.

여기서 제가 제일 흥미롭게 본 건 그다음입니다. 도시는 생겼는데 법이 없었습니다.

연방 정부가 사람만 들여보내고 행정 체계는 준비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스스로 임시 정부를 꾸려 버텼습니다.

그 중심에 Seminole Town and Improvement Company가 있었습니다. Land Run 사흘 전인 4월 19일, 캔자스 토피카에서 만들어진 회사예요.

출발 총성이 울리기 전에 이미 도시를 설계할 조직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순수한 경주처럼 보이는 그림 뒤에 꽤 계산된 움직임이 있었던 셈이죠.

경쟁 회사들도 각자 측량을 했고, 그 결과가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측량팀이 Main Street에 이르렀을 때 어긋남이 크게 드러났다고 합니다.

결국 4월 27일 주민 집회에서 절충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그래도 남의 부지를 가로채는 lot jumping 분쟁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소송으로 이어졌어요.

정식 법이 들어온 건 1890년 5월 2일 Organic Act가 통과되면서였습니다. 오클라호마 준주가 생기고, 지역 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네브래스카 법을 빌려 썼습니다.

오클라호마시티가 시로 정식 법인이 된 건 1890년 7월 15일입니다. 도시가 생기고 1년 넘게 지나서야 법적으로 도시가 된 거예요.

참고로 1890년 연방 인구조사 원본 기록은 대부분 화재로 사라졌지만, 도시별 인구 집계는 남아 있습니다.

숫자 하나가 더 있습니다. 1890년 인구조사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인구는 4,151명이었습니다.

첫날 1만 명이 넘던 곳이 1년 뒤에는 절반도 안 남은 겁니다. 도시 부지를 못 잡았거나, 주변 농지로 옮겨 갔거나, 아예 떠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겠죠.

저는 이 숫자가 Land Run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만에 생긴 도시라는 말은 화려하지만, 그 뒤에는 자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도시는 버텼고, 1900년에는 인구가 10,037명으로 다시 늘었습니다. 1907년 주 승격 뒤 1910년에는 주도 자리도 거스리에서 가져왔고요.

요즘 신도시 개발 뉴스를 보면 이 이야기가 겹쳐 보입니다. 사람을 먼저 모으고 제도는 나중에 맞추는 방식은 빠르지만 비용을 남깁니다.

그렇다고 그 속도와 에너지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기념할 때는 원래 땅의 주인들과 떠난 사람들까지 같이 기억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다음에 Bricktown에 가시면 그 동상을 한번 천천히 보세요. 앞만 보고 달리는 저 말들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같은 조형물이 꽤 다르게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