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바인에 처음 차를 몰고 들어갔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길이 너무 반듯하고, 동네마다 분위기가 비슷하게 정돈돼 있어서 마치 누가 미리 그려놓은 도면 위를 달리는 느낌이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느낌이 틀린 게 아니었어요. 어바인은 실제로 처음부터 설계된 도시입니다.
이야기는 한 목장에서 시작돼요. 지금의 어바인 땅 대부분은 원래 어바인 랜치라는 거대한 목장이었고, 어바인 컴퍼니는 이 회사의 시작을 1864년으로 잡고 있어요.
목장 면적은 자료마다 9만 3천 에이커, 9만 4천 에이커로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 어느 쪽이든 한 가문과 회사가 이 정도 땅을 통째로 갖고 있었다는 게 지금 기준으로는 잘 상상이 안 되죠.
전환점은 대학이었어요. 1959년 캘리포니아 대학이 남부 캠퍼스 부지로 어바인 랜치를 고르면서 판이 완전히 바뀝니다.
그때 불려온 사람이 건축가 윌리엄 페레이라예요. 대학의 자문 건축가였던 그는 대학을 한가운데 두고 그 주변에 도시를 새로 짓자는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보통 도시는 사람이 먼저 모이고 길과 학교가 뒤따라오잖아요. 어바인은 순서가 정반대였던 거죠.
1964년 6월 20일에는 린든 존슨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아직 들판이던 이 땅에 내려 UC 어바인 부지 봉헌식을 했어요. 캠퍼스가 실제로 문을 연 건 1965년 10월 4일입니다.
참고로 UC 어바인이라는 이름도 도시 이름을 딴 게 아니에요. 어바인 랜치를 운영했던 지주 제임스 어바인에서 온 이름이라, 대학이 도시보다 먼저 그 이름을 쓴 셈입니다.
페레이라와 어바인 컴퍼니 계획가들이 그린 도시의 핵심은 빌리지라는 개념이었어요. 동네마다 학교, 공원, 쇼핑센터를 따로 갖춘 생활권을 만드는 방식이죠.
여기에 산업 지역, 주거 지역, 상업 지역,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그린벨트까지 미리 자리를 정해뒀어요. 어디에 무엇이 들어설지 처음부터 정해놓은 셈이에요.
1970년까지는 터틀록, 유니버시티 파크, 웨스트파크, 엘카미노리얼, 월넛 같은 초기 빌리지들의 첫 단계가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1971년 12월, 이 동네 주민들이 투표로 시 승격을 결정했어요. 투표는 12월 21일에 2대 1 차이로 통과됐고, 주 정부 인증은 12월 28일에 났습니다.
재밌는 건 주민들이 선택한 시 경계가 페레이라의 원래 계획보다 훨씬 넓었다는 점이에요. 설계도를 받아든 주민들이 스스로 판을 더 키운 거죠.
그럼 그때 인구는 몇 명이었을까요? 시 웹사이트 자료로는 1971년 인구가 1만 81명이었어요.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출발 인구가 7천 명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찾은 공식 자료에선 그 숫자를 확인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시가 직접 공개한 숫자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는 속도가 정말 무서웠어요. 시 자료로 1975년에 3만 1,750명이 됐고, 카운티 인구통계센터 자료로는 1980년 인구조사에서 6만 2,134명이었습니다.
1990년엔 11만 330명, 2000년엔 14만 3,072명이었고요. 2010년엔 21만 2,375명, 2020년 인구조사에선 30만 7,670명까지 올라갔어요.
숫자만 놓고 보면 10년마다 한 단계씩 계단을 오른 모양새예요. 제 눈엔 빌리지를 하나씩 채워 나간 흔적이 그대로 숫자에 찍혀 있는 것처럼 보여요.
시가 낸 2025 회계연도 재무보고서에는 2025년 6월 30일 기준 인구가 31만 8,629명으로 나와 있어요. 시가 된 해와 비교하면 30배가 넘는 숫자예요.
원래 계획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도 자료마다 달라요. 5만 명 도시라는 설명도 있고, UCI 도서관 자료는 10만 명 구상이라고 하는데, 어느 쪽이든 지금 어바인은 그걸 훌쩍 넘었습니다.
제가 자동차 일을 하다 보니 도시를 볼 때 자꾸 길부터 보게 되거든요. 어바인은 확실히 차로 움직이기 편하게 짜인 도시라는 인상이 강해요.
근데 솔직히 반대쪽 시각도 이해가 갑니다. 너무 깔끔하고 비슷비슷해서 동네마다 개성이 없다, 걸어서 우연히 뭘 발견하는 재미가 없다는 얘기도 꽤 들어요.
계획도시의 장점은 예측 가능하다는 거예요. 학교가 어디 생기고 공원이 어디 있는지 미리 알 수 있으니, 아이 키우는 집 입장에선 이만큼 마음 편한 데가 없죠.
한편으로는 그 예측 가능성이 대가를 치르기도 해요. 땅 상당 부분을 한 회사가 오래 쥐고 개발해온 구조라서, 도시의 방향에 그 회사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계속 나옵니다.
저는 둘 다 맞는 말이라고 봐요. 도면 위에서 시작한 도시라서 생긴 장점과 단점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니까요.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있어요. 목장 들판에 대학 하나 세우고 그 주변을 설계하겠다는 발상이 반세기 만에 30만 명 넘는 도시로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꽤 놀라운 일이에요.
다음에 어바인 큰길을 달리다가 동네 입구 표지판이 보이면 한번 떠올려 보세요. 지금 지나는 그 빌리지도 누군가 수십 년 전에 종이 위에 먼저 그려둔 동네라는 걸요.
저라면 이 도시를 정 없는 계획도시라고만 부르진 않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사람 살 자리를 고민해서 만든 도시라는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갑니다.

bluestylecreator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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